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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8. 2021

단절된 사회고발극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의 공개 이후 국방부는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드라마 공개 이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군필 남성의 글이 SNS에 흘러넘쳤고, 2014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과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리며 인권침해적인 병영문화의 현실을 다시금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드라마의 흥행은 국방부로 하여금 (별 의미 없을지라도) 과거와 현재의 병영문화에 대해 재차 해명하게 만들었다. 국방부의 말대로 군대에 징집되어 군생활 중인 사병 사이에서 병영 내 가혹행위로 인해 총기난사 혹은 자살 사건이 보도되는 빈도는 많이 줄었다. 그와 동시에 올해에만 수차례 여러 부사관이 군내 내에서 겪은 성범죄, 가혹행위, 차별적인 행정 등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더 많이 보도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허용이 사병들로 하여금 군대를 견딜만한 곳으로, 조금이나마 외부로 개방된 공간으로 만든 반면, 이곳이 직장이자 커리어인 부사관들에겐 더욱 폐쇄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신호일까?

 <D.P.>의 배경은 2014년이다. 드라마 속 TV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하고 편의점에는 "허니버터칩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시기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두 사건이 벌어진 해이다. 한 군 간부가 "드라마 속 사건은 2000년대 중반에나 벌어졌을 사건"이라 말한 사실이 보도되었지만, 2014년은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으며 SNS가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움직임이 조직될 수 있었던 시기다. 하지만 이는 스마트폰(으로 언제나 접속 가능한 외부)으로부터 폐쇄된 병영 내에서는 이뤄질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러한 '운동'이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는 개방된 안전문조차 없던 폐쇄적 상황이나 다름없다. <D.P.>는 그 내부로 시선을 향한다. 군대는 21개월 동안 폐쇄적인 환경 속에 강제적으로 속박되는 경험이다. 이는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가 군대를 다루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 군대는 외부와 연결되지 못하고, 인물들은 휴가와 전역이라는 형태를 통해서만 외부로 나갈 수 있다. 극 중 먼저 전역해 사회로 나간 태정(하정우)은 군대에 남은 친구와 후임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그는 군대 내 권력관계와 위계를 신봉하며 그것을 사회생활 전반에 적용하고자 하는 한국 남성 특유의 믿음을 보여주지만, 군대 밖으로 나서는 순간 군대 내 폭력의 가해자에서 방관자로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배교자가 된다.

 <D.P.>의 인물들은 그것과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한다.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 보직인 D.P.를 맡은 두 주인공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이 쫓는 이들은 폐쇄적인 군대를 탈출하려 시도한다. 이들의 동기와 행동은 모두 다를지언정, 이들이 향하는 곳은 군대의 외부라는, 자유의지를 지닐 수 있는 공간이다. 가혹행위를 견딜 수 없어서, 자신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를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홀로 남은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그냥 군대라는 공간이 싫어서 등등. 다시 말해 이들은 군대라는 내부를 벗어나기 위해 사회라는 외부로 도망친 이들이다. D.P.는 이들을 체포해 다시 내부로 데려오는, 다시 말해 군대라는 영토의 내부와 외부를 오가야 하는 이들이다. 이는 이들에게 일정 부분의 자유를 보장하기도 한다. 1화에서 준호의 선임으로 등장한 박성우(고경표)는 탈영병을 쫓는 대신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3화에서 공조를 위해 부산에 내려간 준호와 호열은 호열의 훈련소 동기인 김규(배유람)와 태성곤(한우열)은 정장 차림이다. 당연하게도 D.P.는 군대 밖에서 군복을 입지 않는다. 준호와 호열의 상사이자 군탈담당관인 박범구(김성균)는 대대장인 천용덕(현봉식)과 범구의 상사 임지섭(손석구)과 달리 군복보다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D.P.는 군인이지만 군대 밖에서 보직을 수행하는 이들이며, 군대라는 내부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상황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이들을 내세운 드라마 <D.P.>는 일종의 사회고발드라마 장르로서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담이지만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은 <D.P.>를 '덕질'하고 있음을 SNS를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동시에 극의 주역인 이들은 군대라는 테두리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군대 바깥으로부터 군대 내부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정찰병이다.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의 작가 김보통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은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던 과도기"라며 "[D.P. 개의 날]은 그런 과도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2014년, 그리고 김보통 작가와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이 군생활을 했던 2000년대 중반과 지금의 군대는 여러 차이가 있다. 다만 드라마 <D.P.> 속 두 주인공은 군대가 만들어낸 내부와 외부의 경계 속 모순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기보단, 2014년의 과도기적인 군대와 지금의 군대 사이를 가르는 인물처럼 보인다. 단순한 도식화일지도 모르겠지만, <D.P.>는 극 중 배경을 정확히 추측할 수 없는 연도로 묘사하는 대신 "허니버터칩 없습니다"와 같은 2014년에 대한 '고증'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낸다. 2014년이라는 과거와 2021년이라는 지금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매개로 관객과 접촉하는 것이라기보단, 과거와 지금을 새로운 내부와 외부로 설정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D.P.> 속 대부분의 영상은 소프트 포커스를 사용하고 있다. 극의 거의 모든 장면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 속 과거 회상 장면처럼 그려지며, 이는 화면 속에 조명이 등장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작품 내내 사용되는 이러한 미장센은 <D.P.>의 이야기가 언제나 과거에 머무르는 것처럼 묘사한다. 군대를 이미 경험한 이들의 과거를 끄집어내기 위한 선택일까? 혹은 드라마 전체가 몇 시즌 뒤 전역한 안준호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꾸며져 있는 것일까? 어떤 연출상의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순 없으나,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내부와 외부, 즉 과거와 지금이라는 대비는 극 중 D.P.들이 출동 나가는 것처럼 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가니>(2011), <소원>(2013), <한공주>(2013)과 같은 사회고발 영화들이 과거의 사건을 소환하고 뒤늦은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다르게, <D.P.>는 극 중 이야기를 이미 지나간 이야기로 소비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한다. 안전한 현재에서 과거를 추억하거나("내가 저렇게 힘들었지~"라는 무용담 투의 말들), 내가 저 정도는 아니었다는 자백이나("옛날 일은 미안한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같은 말들. 이는 “아마 지금 시점이었으면 [D.P. 개의 날]을 못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내 마음의 변화라기보다, 지금은 탈영 사건도 줄고 자살도 줄고 핸드폰도 지급돼서, 말하자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가 돼버린다."는 김보통 작가의 말에서도 동일하게 느껴지는 뉘앙스다. <D.P.>의 다음 시즌이 무엇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담아낸 2000년대 중반의 군대와 다르지 않은 군대의 모습에서 시작된 드라마는 2014년 실제 벌어진 사건을 재현한 듯한 이미지로 끝난다. 다음 시즌에선 그 이상의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현재의 사건들을 무시한 채 "그것은 과거의 일"이라 못 박아 말하는 국방부의 말을 넘는 다음 시즌이 등장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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