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04. 2021

클로이 자오와 MCU 양쪽 모두에서의 실책

<이터널스> 클로이 자오 2021

*스포일러 포함


 우주의 순환을 관장하는 ‘프라임 셀레스티얼’ 아리솀(데이비드 케이)의 명령에 따라 지구로 내려온 10명의 ‘이터널스’는 미지의 외계생명체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지켜야 한다. 치유능력을 지닌 에이젝(셀마 헤이엑)을 필두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는 세르시(젬마 찬), 막강한 전투능력을 지닌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전쟁의 여신 테나(안젤리나 졸리), 거대한 물리적 힘을 지닌 길가메시(마동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마카리(로런 리들로프), 에너지를 총처럼 발사할 수 있는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드루이그(베리 케오간), 이터널스 팀의 기술자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프라이트(리아 맥휴). 이들은 7,000년 동안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지키며 살아온다. 데비안츠 섬멸이 끝난 후 이들은 각자 흩어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중 런던에서 박물학자로 살아가는 세르시와 그의 애인 데인(키트 해링턴) 앞에 데비안츠가 다시 등장하고, 이터널스는 다시 모이게 된다. <노매드랜드>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의 신작이자 MCU의 26번째 작품인 <이터널스>는 기존 MCU의 작품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시공간의 스케일은 넓어졌고, 기존 MCU 캐릭터는 일정 등장하지 않으며(대사로 언급은 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에고를 통해 잠시 등장했던 우주적 존재 ‘셀레스티얼’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영화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터널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기원전 5,000년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이터널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런던, 뭄바이, 호주의 사막, 아마존, 노스다코다의 시골, 시카고의 교외 등에서 살아가는 이터널스 멤버들의 모습과 바빌론, 테노치티틀란 등 과거의 거대 문명의 도시에서 데비안츠를 물리치던 활약을 함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풍경이다. <이터널스>가 1.43:1 IMAX 화면비를 활용한 첫 MCU 영화인 이유는 풍경에 있다. <로데오 카우보이>와 <노매드랜드>를 통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내 온 클로이 자오를 감독으로 기용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터널스>는 10명의 이터널스 캐릭터 각각이 펼쳐내는 사랑, 우정, 연대, 좌절, 욕망의 이야기를 그들이 살아온 풍경 속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다. 그러한 지점에서 이 영화는 MCU의 영화라기보단 클로이 자오가 그간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타노스의 습격과 어벤저스에 대한 언급 등 기존에 MCU에서 펼쳐진 이야기가 밑바탕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없다 해도 작동 가능한 이야기로 <이터널스>는 존재한다. 물론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셀레스티얼과 다양한 액션 시퀀스가 끊임없이 <이터널스>는 MCU 영화라는 점을 상기시켜주지만.

 <이터널스>가 MCU보단 클로이 자오의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 이 영화는 그가 <노매드랜드>에서 했던 실책을 더욱 크게 반복하고 있다. 클로이 자오의 첫 두 장편영화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와 <로데오 카우보이> 속 인물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각각 사우스다코다주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아메리칸 원주민과 낙마 사고를 겪은 뒤 트라우마를 겪는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두 영화 속 배우는 자신과 유사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다. 몇몇 조/단역 캐릭터는 자신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두 영화는 미국의 황량한 공간, 사막에 가까운 시골의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얼굴을 담는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현재와 카우보이의 트라우마는 유목적인 풍경 속에서 영화 이미지를 통해 정주하게 된 정념으로, 그들의 얼굴을 통해 영화의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노매드랜드>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작품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속에서 인물들의 얼굴과 풍경을 담아내던 클로이 자오의 영화 속에 오스카를 수상한 픽션적 존재의 얼굴이 등장했다. 그의 주변은 감독의 전작들처럼 본인과 유사한 인물 혹은 본인 자체로 출연하는 ‘노매드’로 가득하다. 그 이질성은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을 다른 노매드들의 삶에서 분리시킨다. 때문에 <노매드랜드>는 ‘노매드’들의 삶에 대한 일종의 다크 투어리즘으로 변질된다. 이 영화가 IMAX DMR로 상영되었다는 사실은, 클로이 자오의 영화에서 풍경과 얼굴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것이 자본주의적 스펙터클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IMAX의 ‘스케일’을 미학적으로 이용하는 최근의 사례가 마이클 스노우뿐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놀란과 빌뇌브는 IMAX 화면비를 영화 전체에 적용하는 것에 관해서 예산과 타협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다시 <이터널스>로 돌아오자. 상술한 것처럼 <이터널스>는 클로이 자오가 선보인 영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세르시, 이카리스, 길가메시, 테나 등 대부분의 캐릭터는 그리스-로마, 메소포타미아, 아즈텍 등 다양한 문명의 신화 속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며, 7,000년의 시간 동안 지구 곳곳에서 활동해왔다. 이들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 서로에 대한 우애 등은 광활한 풍경 속에 등장한 얼굴들로 표현된다. 달리 보면 이터널스의 목표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와 함께 인류가 살아가는 풍경 자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라임 셀레스티얼인 아리솀과 에이젝, 세르시가 대화하는 장면에선 행성보다 거대한 크기의 아리솀 앞에서 그들이 보여줄 것은 오직 얼굴뿐임을 알 수 있다. 영화 후반부, 아리솀이 이터널스를 지구에 파견한 진짜 목적이 드러난다. 지구에 뿌려진 셀레스티얼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선 충분한 양의 지적 생명체를 먹이로 삼았어야 했으며, 이터널스는 데비안츠로 인해 지적 생명체가 멸종하는 일을 막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하지만 타노스로 인해 셀레스티얼의 탄생이 지연되었고, 타노스의 악행을 되돌려 놓는 모습을 본 에이젝은 이에 감화되어 아리솀의 계획에 대항하려다 충성심 깊은 이카리스에게 살해된다. 이카리스(와 어린아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에 불만을 품은 스프라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이터널스는 이를 막고자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인도양 한가운데 있는 어느 화산섬에서 진행된다. 새로운 셀레스티얼 티아무트가 탄생하려 한다. 티아무트의 탄생은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소코비아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추락시키는 스케일 이상의 것이다. 티아무트는 탄생과 동시에 세르시에 의해 석화되어 정지된다. 에필로그 속 TV 뉴스는 인도양에 거대한 석상이 등장했다고 보도한다. 그것은 새로운 풍경이다. 불멸의 존재인 이터널스가 인류를 보호했다는 증표로 세운 새로운 석상. 마카리가 티아무트의 탄생지를 찾기 위해 빠르게 지구를 달리던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는 지구의 다양한 풍경은,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을 연상시키는 아리솀의 계획을 저지한 끝에 생성된 새로운 풍경과 대비된다. <이터널스>의 1.43:1 IMAX 화면비는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터널스>는 <노매드랜드>의 픽션적 존재인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얼굴이 그 존재 자체로 영화의 성격을 뒤바꾸어 버린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클로이 자오의 이전 영화들에서 얼굴과 풍경은 불가분의 관계였다면, <노매드랜드>에서 펀의 얼굴은 풍경을 요구한다. <이터널스>의 얼굴들 또한 풍경을 요구해온다. 그 풍경은 우주에서 거대한 함선 ‘도모’를 타고 기원전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하는 모습이고, 스페인 군대의 침략을 받은 불타는 테노치티클란의 모습이며, 원폭으로 인해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모습이고, 티아무트의 탄생을 저지하며 발생한 자연재해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불멸자가 인간의 삶을 살아내며 획득한 풍경과 얼굴 사이의 결합 대신에, 이들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인류 문명사의 특정 순간들(과 지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적인 순간)이 풍경으로서 소환되는 것이다. 이는 MCU라는 거대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이터널스>의 내/외적 과제와 맞물려 더욱 큰 패착으로 다가온다. 화면에 채 담기지 못하는 거대한 셀레스티얼 아리솀의 얼굴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포악하게 하늘을 뒤덮는 풍경으로 등장한다. 이 풍경은 <이터널스>가 클로이 자오의 맥락에서 풍경과 결합된 얼굴을 제시하는 것에 실패했음을, MCU의 맥락에서 세계관의 확장/캐릭터의 소개/페이스4의 전개를 해내는 것에 실패했음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쿠키영상을 반복함과 동시에 “이터널스는 돌아온다”는 마지막의 자막을 한없이 지연시키려는 듯한, 이번 영화의 쿠키영상은 MCU가 지금 해야 될 것이 확장보단 굳히기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만한 속편이자 예고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