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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8. 2021

MCU 최고의 길티 플레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존 왓츠 2021

*스포일러 포함 제발 스포일러 있다는 경고문을 읽으세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쿠키영상에 등장한 데일리 뷰글의 JJJ 편집장(J. K. 시몬스)는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의 제보를 통해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임을 만천하에 폭로한다. 2년 만의 신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그 쿠키영상에서 시작한다. 스파이더맨은 새로 나타난 슈퍼히어로 미스터리오의 살인 혐의를 쓰게 되고, 변호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반으로 갈린 여론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게다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에 함께 휘말린 MJ(젠데이아)와 네드(제이콥 배덜런)까지 논란으로 인해 MIT에 불합격하고 만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이어가려는 해피(존 파브로)와 노숙인 쉼터 피스트(F.E.A.S.T.)를 운영 중인 메이(마리사 토메이) 또한 각자의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스파이더맨인 것을 잊게 하는 주문을 걸어달라고 하지만, 우유부단하게 주문을 바꾸는 피터로 인해 실패한다. 그 여파로 멀티버스에 균열이 발생하고,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 그린 고블린(윌렘 데포),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 리저드(리스 이반스), 일렉트로(제이미 폭스)가 피터를 찾아온다. 

 <노 웨이 홈>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하고 멀티버스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부터 모두가 기대하던 그림이 얼추 완성되었다. 모종의 이유로 멀티버스에 균열이 생기고, 스파이더맨이 존재하는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빌런들은 물론,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다른 스파이더맨이 함께 모이는 장면, 팬들의 2차 창작물에서나 존재하던 장면을 MCU 정사(canon)에서 만나는 쾌감은 꽤나 강력하다. 영화 상영 도중 극장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앤드류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등장하는 순간을 극장에서 경험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첫 번째 <어벤져스>에서 여섯 캐릭터가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터져 나왔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모두가 돌아왔을 때 터져 나왔던 포화상태의 기대감이 충족되어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노 웨이 홈>의 상영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어린 시절부터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를 꾸준히 관람해왔으며, MCU 세계관에 열광해온 이들, 다시 말해 <노 웨이 홈>이 팬데믹 시기에도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해버리는 원동력이 되어준 스파이더맨 팬덤에 국한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열광하고 그 쾌감만으로 <노 웨이 홈>을 평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을 MCU의 다른 슈퍼히어로와 구별하는 것은 익명성이다. MJ와 네드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전임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의 익명성’을 이야기한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더 나아가 놀란의 <다크 나이트> 삼부작, 슈퍼히어로 장르의 출발점과도 같은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까지, 하지만 MCU는 그런 세계가 아니었다. 토니 스타크의 “I am Iron Man”으로 시작하여 같은 대사로 마무리된 인피니티 사가에서 슈퍼히어로의 익명성은 없었다. 코믹스의 [시빌 워]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활동하는 슈퍼히어로에게서 익명성을 빼앗으려는 법안에 기반했다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소코비아 협정은 이미 모두가 정체를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들을 일종의 경찰이나 군인처럼 법제화하려는 시도였다.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이고,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로마노프이며, 헐크는 브루스 배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익명성은 없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MCU 드라마에서도 슈퍼히어로들은 이미 모두가 그 정체를 알고 있다. 그들에게 전달되는 시민들의 말은, 미국인들이 군인들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 건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파이더맨의 존재는 MCU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의 모든 멤버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익명의 존재이며, 얼굴을 완전히 감추는 마스크를 쓴 채 활동한다. 피터 파커가 자신의 정체를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쫑알쫑알 말하고 다닌 것과는 별개로, “스파이더맨=피터 파커”라는 등식은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처럼 모두에게 공개된 사실이 아니다. <노 웨이 홈>은 그러한 익명성을 삭제한 순간에서 촉발된 이야기다. 그리고 <노 웨이 홈>은 피터 파커가 완전한 익명성을 되찾으며 끝난다. 이번 영화의 이야기는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앞선 두 명의 스파이더맨과 같은 상황으로 향하게 되는, 복잡하게 얽힌 MCU의 세계에서 빗겨나가 자기 자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말처럼 아직 철없는 고등학생인 피터 파커가 마침내 철드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떠한가? 피터 파커는 자신의 차원으로 넘어온 다섯 악당을 붙잡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들을 원래 차원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MCU로 넘어온 다섯 악당은 각자가 스파이더맨과 싸우던 중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MCU의 세계로 넘어왔다. 물론 <스파이더맨 3>에서 죽지 않은 샌드맨과 다른 두 스파이더맨은 2024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MCU의 시계에 맞춰, 각자 생활하던 2024년에서 넘어왔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다른 차원으로 끌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피터는 메이의 의견에 힘입어 그들을 ‘치료’하려 한다. 그리고 다른 두 스파이더맨은 너무나도 쉽게 피터의 의견에 동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MCU 스파이더맨 이전의 두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과 빌런을 가르는 기준은 단순했다. 두 스파이더맨과 다섯 빌런은 우연히, 사고로 인해 슈퍼파워를 얻게 되었다. 스파이더맨이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던 것처럼, 다섯 빌런 또한 처음부터 빌런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기 다른 싸움을 벌인 후, MCU의 피터 파커가 말하는 ‘치료’ 비슷한, 일종의 ‘회개’를 맞이하며 죽었다. 그린 고블린은 노만 오스본으로 죽었으며, 닥터 옥토퍼스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였고, 리저드는 자신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처한 스파이더맨을 구한 뒤 죽었다. MCU를 제외한 역대 스파이더맨 빌런 중 끝까지 악당이었던 이들은 <스파이더맨 3>의 베놈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일렉트로와 고블린 정도다. 다시 말해 <노 웨이 홈>에서 그들을 치료해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설정은, 스파이더맨과의 싸움을 통해 악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최후를 맞이한 빌런들이 실은 MCU로의 차원 간 여행을 통해 스파이더맨을 통해 ‘치료’된 뒤 돌려보내져 인간성을 되찾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이 과정은 과연 윤리적, 도덕적인가? 똑같이 슈퍼파워를 얻었음에도 피터 파커는 정의로운 스파이더맨이기에 치료 대상이 아니며 빌런들은 악당이기에 치료받아야 하는 이로 분류된 것인가? 이는 스파이더맨이 자체적인 소코비아 협정을 집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노 웨이 홈>의 모든 것이 비윤리적이며 앞선 시리즈에서의 결과물을 모욕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MJ를 구한 뒤 울먹이는 모습과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 그린 고블린을 죽이려는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을 막아서는 장면을 보면서, <노 웨이 홈>이 앞선 스파이더맨들과 그들이 등장한 영화를 모욕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이 매끈하게 마름질된 MCU 세계관에서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스파이더맨과 빌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선물 같은 일이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 웨이 홈>은 대의를 위해 수많은 캐릭터를 낭비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보다는 만족스러운 크로스오버 이벤트다. 

 다시 익명성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피터 파커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멀티버스 간의 균열을 막는 방법으로 모두가 자신을 잊게 하는 주문을 걸어 달라고 부탁한다. 피터는 다른 두 스파이더맨, 그리고 두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메이는 죽었고, 해피는 피터 파커라는 사람의 존재를 잊었다. 완전히 혼자가 된 피터 파커는 마침내 온전한 익명성을 얻게 된다. 멀티버스가 열리고 다른 차원의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복잡한 과정 끝에 가서야 피터 파커는 자신과 스파이더맨을 분리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양자를 오가는 삶 대신 무엇 하나를 택한 상황으로 나아간다. 두 명의 벤 삼촌과 한 명의 메이 숙모, 그리고 세 명의 스파이더맨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의 의의는, <노 웨이 홈>의 마지막 10분에 가서야 드러난다. 거대한 팬서비스와 상충하던 격언이 마침내 의미를 갖게 되었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앞으로 세 편의 영화가 더 예정되어 있으며, 톰 하디의 <베놈> 시리즈나 내년 초 개봉 예정인 <모비우스> 등과 연계될 예정이다. MCU의 스파이더맨은 세 편의 영화를 거치고 나서야 유사-아버지가 필요 없게 되었다. MCU에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도입될 때부터 팬과 스튜디오가 욕망하던 그림과 함께 제시된 윤리적인 모순 속에서, 스파이더맨-피터 파커는 처음으로 누구의 욕망도 대리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거대한 장점과 거대한 단점이 공존하는 <노 웨이 홈>은 스파이더맨이 누구의 유사-아들도 아닌 피터 파커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 지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번 영화의 순간들과 그간 MCU 스파이더맨이 지나온 길을 뒤로하고 새 출발 하게 된 스파이더맨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노 웨이 홈>은 MCU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길티 플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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