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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3. 2021

단순한 '재탕'이 아닌 이유

<매트릭스: 리저렉션> 2021 라나 워쇼스키

*스포일러 포함


 게임 개발자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던 중 실험적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에서 버그가 발생한 것을 발견한다. 정신병적 증상을 앓고 있는 그는 사장 스미스(조나단 그로프)와 대화하며 데자뷰를 느끼고,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티파니(캐리 앤 모스)를 과거에서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그의 상담사(닐 패트릭 해리스)는 파란 알약을 주며 그를 지금 상황에 붙잡아두려 한다. 그러던 중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와 벅스(제시카 헨윅)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앤더슨에게 빨간 약을 주며,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와 ‘네오’로 돌아올 것을 제안한다. 앤더슨는 다시 한번 선택을 하게 된다. <매트릭스 3: 레볼루션> 이후 18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두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와 함께 돌아왔다. 공동연출자인 릴리 워쇼스키는 다른 작업 중이기에, 라나 워쇼스키가 단독으로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1996년의 데뷔작 <바운드>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센스 8>, 심지어 <매트릭스> IP를 사용한 비디오 게임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 연출해왔지만, 자매 중 한 명이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리저렉션>은 일종의 메타-시퀄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도 많은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당장 올해 개봉한 작품 중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그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리저렉션>은 메타적인 요소를 가장 대담하고 뻔뻔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게임 개발자인 토마스 앤더슨의 히트작은 1999년 발표한 [매트릭스]다. 극 중에선 <매트릭스> 삼부작의 몇몇 장면이 게임 속 컷씬인 것 마냥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앤더슨의 사장 스미스는 게임 [매트릭스] 삼부작의 성공 이후 모기업인 ‘워너 브라더스’에서 속편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며, “매트릭스로 되돌아가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워너 브라더스가 워쇼스키에게 속편을 계속 요구한 것과 겹쳐 보인다. 토마스 앤더슨이 네오로 돌아온 이후, 그들이 티파니-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습격한 ‘망명자’의 대장은 지금의 음악, 영화, 책을 향해 독창성이 없다고 독설을 날린다. 싸움에서 패배한 그는 후퇴하며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라고 말한다. 물론 <리저렉션>이 스스로 18년 만에 컴백한 시퀄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것 자체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커뮤니티> 같은 시트콤, <릭 앤 모티> 같은 애니메이션, <데드풀> 시리즈 등 최근 몇 년만 돌아봐도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작품은 한없이 많다. 그렇다고 <리저렉션>은 시퀄/프리퀄/리부트/리메이크/스핀오프 등 수많은 방법으로 되돌아오는 콘텐츠들을 단순히 비판하고 조롱하는 작품은 아니다. 픽션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매트릭스> 1편의 주요 컨셉 중 하나인 ‘데자뷰’가 이번 영화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리저렉션> 속 게임 [매트릭스]는 대성공을 거둔 히트상품으로 다뤄진다. 게임 [매트릭스] 삼부작의 이야기는 우리가 보았던 영화 <매트릭스> 삼부작과 동일하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게임 [매트릭스]는, 그 안에서 이미 이야기와 결말, 캐릭터가 정해져 있는 것일지라도, 동일시의 환상을 플레이어에게 심어준다. 온라인게임으로 실제 제작된 [매트릭스: 온라인]을 떠올려보자. 게임 자체는 엉성한 완성도와 이야기로 혹평받으며 금세 서비스 종료되었지만, 베타 테스트 종료 당시 게임 속 ‘매트릭스’가 붕괴하는 것처럼 게임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모든 캐릭터가 ‘방출’되었던 상황만은 게이머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 <매트릭스>의 관객들이 그 세계 속에 접속하여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려는 욕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매트릭스> 이외에도 대부분의 히트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각자의 게임 버전을 가지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게임화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캐릭터와 동기화되고자 하는 욕망이 발산되는 방법 중 하나다. 일종의 ‘저렴한’ 코스튬플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간 네오는 전쟁으로 인해 사라진 ‘시온’ 대신 생존자이자 협상가인 나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이끄는 ‘이오’다. <레볼루션>에서 죽음을 맞이한 네오가 기계에 의해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되며 만들어진 매트릭스 속에서 게임 개발자로 살아가는 동안 현실에서는 60년의 시간이 흘렀으며, 이곳에서 나오베는 인간-기계-프로그램의 협력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는 네오와의 대화 중 네오가 죽은 뒤 과거의 모피어스가 이끌던 시온은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를 취했으며, 그렇기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앤더슨의 게임회사 사장의 껍데기를 쓰고 있던 스미스 요원은 이분법으로 나뉜 과거의 세상이 좋았다고 말한다. 앤더슨이 개발하고 있던 신작 게임의 제목은 ‘이분법(Binary)’이다. <매트릭스> 삼부작은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던 세계였다.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은 기본적으로 이곳과 저곳 사이의 경계를 요구한다. 반면 <리저렉션>의 세계는 그러한 경계를 ‘덜’ 요구한다. 현실과 매트릭스라는 구조는 여전히 가져가지만, 매트릭스 속 게임 [매트릭스]의 서사와, 앤더슨이 실험하던 ‘모달 101’ 속 새로운 모피어스가 존재하는 ‘매트릭스’의 반복과, 앤더슨/네오에게 종종 환영처럼 등장하는 이전 <매트릭스> 삼부작은 경계 없이 튀어나오고 사라진다. 다시 말해 <리저렉션>에서 중요한 것은 구획된 현실/매트릭스의 이분법적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고 돌파하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택하고 행하느냐다. 

 이는 빨간약과 파란약으로 대표되는 삼부작의 ‘선택’ 컨셉을 이어감과 동시에, 세계, 구조, 운명, 메시아 같은 개념들 대신 행위자에 주목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다시 기존 삼부작이 이번 영화에서 게임으로 만들어졌으며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을 정도의 히트작임을 떠올려보자.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택하는 매체다.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 상대방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어떤 선택지를 고를 것인지 등등. 정해진 결말로 향하더라도 그 과정은 여러 선택을 경유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 선택을 플레이어가 했다고 믿게끔 유도하는 것이 게임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2]를 둘러싼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린) 논쟁 또한 그것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앤더슨의 상담가(극 중 이름은 The Analyst로 나온다)는 사실(fact)을 바꾸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부분을 통제하는 것이 더욱 손쉬운 방법이라 반복하여 말한다. 그리고 그의 정체는 매트릭스의 새로운 관리자였다. 행위자 중심으로의 변화, 게임, 선택, 감정적 몰입, <리저렉션>이 지시하는 여러 요소들은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를 겨냥한다. 다시 말해 모두가 행위자이며 인플루언서이고, 생산자와 소비자, 작가와 독자, 크리에이터와 구독자의 경계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여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리저렉션>은 가짜 뉴스 시대에서 모두가 미디어에 관여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리저렉션>은 게임화된 지금의 일상을 반영한다. <리저렉션>은 독창성 없이 반복되는 속편과 리메이크들을 겨냥하며 다른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어간다. 기타 등등. 여기서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지라도 <매트릭스> 시리즈가 지닌 퀴어함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매트릭스> 삼부작의 주요 캐릭터 중 명시적인 퀴어 캐릭터는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퀴어한 해석은, 여느 히트 프랜차이즈가 그러하듯, 매우 방대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트리니티의 라텍스 복장은 소녀들을 레즈비언으로 각성시키기에 충분했고, 그것을 비롯한 일본 사이버펑크 아니메의 영향을 짙게 받은 의상들은 충분히 캠피(campy)한 것이었다. 기계들이 만들어낸 ‘인간 배터리’를 뚫고 나와 현실과 마주하는 모습은 ‘벽장’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다. IT 기업 회사원과 해커의 삶을 오가는 앤더슨의 이중적인 삶이 네오라는 진짜 정체성으로 향하는 1편의 이야기를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 해석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두 감독이 모두 퀴어로 커밍아웃한 대표적인 할리우드 감독 아닌가. 

 영화 속에서 60년 만에 돌아온 네오와 트리니티를 마주한 새로운 세대들의 반응은 <매트릭스> 시리즈에 대한 퀴어한 해석을 영화 속으로 끌어온다. 네오와 함께 트리니티를 구하러 떠난 한 남성 캐릭터는 장발과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은 나이 든 네오를 보고 “그래서 더 좋다”라고 말한다. 벅스의 팀원인 렉시(에렌디라 이바라)는 트리니티가 자신을 각성시킨 존재라고 말한다. 벅스는 매트릭스 속에서 앤더슨/네오를 보고 각성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영화의 내적인 맥락, 네오와 트리니티는 전설적 인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연관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시리즈가 선보여온 퀴어한 맥락에 따라 이 장면들을 다시 보자면, 네오와 트리니티는, 그들이 비록 백인 헤테로 커플일지라도, 퀴어 아이콘으로서 존재해왔다. 그들의 귀환은 그들을 보고 매트릭스를 벗어난 이들에겐 상징적인 사건과 다름없다. 모두를 동일한 행위자로서 대하는 <리저렉션>의 변화한 세계에서,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일종의 그물망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담가에 의해 감정적으로 조종당해 봇(bot)이 될 것인지, 매트릭스를 벗어나 현실로 나올 것인지, 과거의 모피어스처럼 다시금 적과 싸우는 투사가 될 것인지, 나오베처럼 협상가이자 협력자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지는 더 이상 빨간약과 파란약의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다. <리저렉션> 속 행위자들은 각자가 서로의 시퀄, 프리퀄, 리부트, 스핀오프에 다름없다. 

 물론 <리저렉션>의 여러 부분은 기존 삼부작에 비해 아쉽게 다가온다. 원화평이 빠진 액션은, “아직 쿵푸를 할 줄 알아”라는 네오의 대사가 무색하게 전혀 ‘쿵푸’ 같지 못하다. 대사를 통해 설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여전하다. ‘불렛 타임’과 같은 야심적인 장면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오히려 봇들의 공격 장면에선 <부산행>이나 <월드 워 Z> 등 최근 좀비 영화들의 영향을 발견하며 시리즈의 비주얼적 완성도가 독창성을 잃어버렸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엄격하게 통제된 상황 속에서 촬영해왔던 전작들과 다르게 자연광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실제 도시에서 촬영하게 되며 전작과는 다른 질감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리저렉션>이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과거의 영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되돌아오는 와중에, 그것을 자기 반영적으로 냉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저렉션>으로 <매트릭스> 프랜차이즈가 ‘부활’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1편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리저렉션>의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영화가 1999년과는 너무나 달라진 지금의 미디어 환경을 반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에 관한 답을 들은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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