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Oct 22. 2020

마침표

아직도 네가 어렵다

너무 마음을 준 사람들은 떠날 때도 받은 마음을 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겐 마음을 돌려주지 않고 떠나온 적이 있었겠지. 아무리 쥐어짜도 남에게 상처 준 일들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나를 떠난 수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어려운 때도 있었고, 헤어짐에도 순서와 예의가 있다고 믿기도 했지만, 이제는 준비하지 못한 헤어짐과 이유를 모르는 헤어짐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찌질했던 시절에 만나, 함께하면 웃을 일만 있던 친구들이 있었다. 서로의 꿈을 지지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의지가 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의 자격지심이 문제였다. 조금 늦게 자리를 잡은 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고민의 수준도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참이나 앞에 있는 친구들과, 계속 제자리만 맴도는 나를 비교하며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굳이 무슨 일이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혼자 그렇게 속앓이만 했다. 만나자고 해도 피하고, 어쩌다 만나도 대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배배 꼬아서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연히 간 카페에서 그 무리의 한 명과 마주쳤다. 잠깐 대화할 수 있냐기에 같이 나갔다.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물었지만 자기도 모른다며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서운했다. 그리고는 대뜸 그 친구가 물었다.


"너는 힘들 때 부를 친한 사람이 있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엔 그걸 물은 친구와 그 무리들은 '힘든 일이 생기면 부를 수 있는' 부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린 만나면 즐거운 이야기만 했고, 나의 어둡고 불안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의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든 그런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한두 명 정도 있지. 거의 없어."


난 틀린 답을 말했다. 적어도 그 친구에게는.

친구는 자기를 비롯한 그 무리가 바로 나에게 그런 존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적어도 그 자신은 우리에게 힘들 때 기댈 수 있다고 믿었다는 말을 했다.

말문이 막혔다.

나에게도 너희가 소중한데. 소중한 건 맞는데.

하지만 달리 내 감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몇 번 단체 채팅방에서 먼저 말을 꺼냈지만 딱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크게 상처를 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상처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더는 이어갈 의미가 없어서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날에 인사도 없이 채팅방을 나와버렸다.


당연히, 라고 해야 할까. 그 후로 그들 중 누구도 먼저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오래도록 마음이 힘들었다. 십 년이 넘는 추억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다시 그들 같은 인연을 만날 수 없겠지. 조금 마음을 덜 주고 차라리 과장되게 마음을 표현할 걸 그랬나 후회도 했다.




미성숙한 이별을 겪으면서 헤어질 때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귀다가 헤어지는 것보다도 친했던 이들과 멀어지는 게 더 힘들었다. 그렇게 아직도 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더 평온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떠나간 사람들이 내가 없는 관계에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