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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Oct 25. 2020

취업은 어려워

냉정한 밥벌이의 세계

밖은 춥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살 때가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하며 아늑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니, 적어도 소소하게 내가 하고 싶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도 괜찮은 나이가 얼마나 소중한 시기였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임용고사 준비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우리집은 뒤집어졌다. 그동안 나를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의 관심, 사랑, 그리고 돈. 다소 직설적이지만 정말 부모님이 나를 키울 때 투자하신 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일에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셨으니까.


부모님이 나를 부르는 애칭, 아니 별칭. 걸어다니는 돈덩어리.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애지중지 하나뿐인 딸에게 투자하신 부모님께 나는 '떡락'으로 보답했다. 슬프지만 시험을 그만둔 나를 표현할 방법이 이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자식'이라는 주식이 아무 전조도 없이 눈앞에서 인생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황망하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부모님의 심정을 아마 나는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야만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어디에 취직할 거냐, 면접 때 입을 깨끗한 옷은 있냐, 시험 준비한답시고 찌운 살은 어떡할 거냐, 대기업에 시험보려면 지금부터 또 준비해야 한다, 남들은 벌써 승진하고 돈도 이만큼 모았다던데....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마음에 깊고 진한 상처가 남았다.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진 시험이 아니고, 부모님 재산을 믿고 대충 산 것도 아니었다. 끈 떨어진 두레박, 낙동강 오리알, 어미 잃은 새끼 오리. 전부 나를 위해 준비된 표현이 아닐까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며칠을 내리 계속되는 압박에 마음이 급해져서 일단 어디든 취직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면접을 몇 군데나 봤는지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정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자기소개서? 그런 건 몇 줄 쓰지도 않았다. 이력서를 보고 먼저 연락이 온 곳도 있었다. 하도 많은 곳에 지원하다 보니 회사마다 자소서 내용을 다르게 쓸 수 없어서 '어디에 지원해도 어색하지 않은' 평범한 내용을 써서 온갖 회사에 지원했다. 연락이 여러 곳에서 오긴 했지만 막상 가 보면 어딘가 묘하게 이상했다. 바이럴마케팅, 텔레마케팅, 문서정리, 멀티가 가능한 분. 대체로 이런 문구로 홍보하는 회사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남들은 어찌 그리 좋은 회사에 잘도 붙어서 다니는지. 이름 좀 알려진 대기업에 지원하는 방법도 모르고 의지도 부족하며 자존감까지 무너진 나는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야겠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 하나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 국어. 국어랑 관련된 일 중에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은 출판사가 최선이었다. 일찍부터 임용고사에는 뜻을 접은 몇몇 주변 사람들이 이미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출판사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문제도 아니었다. 단지 나를 원하는, 내가 일할 수 있는 출판사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무작정 서점으로 갔고, 일단은 그나마 잘 아는 분야인 소설이나 에세이 책 코너를 돌아다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출판사가 있었다. 이런저런 책을 보며 왠지 이름만 봐도 끌리는 출판사 몇 곳을 기억해두었다.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보고, 주변에도 물어보며 이런저런 출판사에 대해 알아보았고 내가 점찍은 출판사는 나 말고도 많은 출판업계 종사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무조건 지원했다. 큰 출판사에 가면 대기업에 다니는 기분이 나겠지. 유명한 출판사에 들어가면 부모님도 조금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시겠지.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회사에서는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원한 지 2주가 넘어가자 불안해졌고, 이제 는 들어본 적 없는 출판사에도 지원해야 했다. 그렇다고 그 출판사들이 넘기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몰랐을 뿐, 수많은 출판사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유명한 곳이었고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을 뽑고 싶어 했다. 스물 일곱에 회사 경험이 전혀 없는 사범대 졸업생을 반겨주는 회사는 과연 몇이나 될까. 계속되는 실패에 눈물이 났다. 이대로 백수가 되면 어쩌지. 이제 모은 돈도 떨어져 가는데.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집에는 또 어떻게 말해야 하지. 돈 없으면 친구들 만나기도 민망한데.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한 줄기 빛처럼 몇 군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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