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결재하는 차장님은 경쟁 중
이전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최근에는 취업이 어려워지고, 또 비교적 큰 어려움 없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매우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생각보다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한 현상이 몇년전에는 공무원 취업 열풍을 몰고 왔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사실 더 좋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은행 취업이다. 상대적으로 급여도 높고 복지도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고 직업 안정성(job security)가 비교적 높다는 인식 하에 ‘은행고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심지어는 대학 1학년 들어가면서부터 은행을 목표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고, 금융과 조금만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자격증이 있으면 그것도 진공청소기 수준으로 모조리 따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은행이 아무리 다양한 방식으로 신입직원을 평가하고 채용기준을 만들어 운용한다고 해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그 채용방식을 분석하고, 흔히 말하는 취업 뽀개기를 몇년간 준비해온 사람들을 놓고, 그 사람 본래의 본 모습을 그대로 파악해서 채용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다양하고 화려한 스펙에 현혹되기도 하고, 고급의 취업시헙 합격 비법을 익혀 정답을 술술 말하는 이들을 보고 뽑지 않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은행에 들어온 다음부터다.
은행에 일단 합격을 하면 그들이 본 모습을 들어내곤 한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개인적으로 주변의 은행 동료들을 통해 들은 바를 토대로 얘기하자면, 신입직원 임에도 이미 은행의 작동원리나 정치논리를 다 꿰뚫고 있는 친구들이 많고,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보수적 성향과 맞물리면서 ‘애 늙은이’ 같은 신입직원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직원들은 대체로 궁금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고객의 업무를 해결하거나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좀 서툰것 같다. 나의 아버지 상속 예금을 처리한 그 직원과 유사하게 고객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다른 수단 (직원 콜센터나 직원 업무 지원용 자료모음 등)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물론 열심히 잘하는 직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의 얘기처럼 수줍고 보수적이어서 과거 공무원을 비하 하듯이 말하는 복지부동의 모습과 유사한 그런 직원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인데, 이러한 직원들의 성향도 직원 전용 업무 콜센터가 더욱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를 제공하는 것 같다.
직원용 콜센터 직원들의 경우도 원래 그 업무를 오래해서 정통한 직원들이 상담사 역할을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보통은 그 업무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이 매뉴얼 등을 통해 세분화된 특정 업무 하나를 집중적으로 학습해서 영업점 직원을 응대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여러업무가 중첩적으로 섞여 있거나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애매한 업무에 대한 문의에 대해서는 콜센터에서도 잘 응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본점에서 일하는 그 해당 업무 기획 담당자들에게까지 다시 연락을 해서 원하는 답을 듣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예전에 내가 일하던 지점에 신입직원이 들어 왔는데, 2년 선배인 직원이 업무를 알려준다고 하면서 신입직원에게 해주는 학습내용이, 실제 그 업무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어떤 업무는 본점에 있는 누구에게 전화하면 되는지 상황별 연락해야할 연락처를 알려주고 있었다. 업무내용을 알려줄 것을 기대하던 나로서는 많은 실망을 했다.
사실 내가 더 실망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직원상담 전용 콜센터가 처음 생길 무렵 은행에 들어온 신입직원들이 이제는 고참이 되었다고 앞에서 얘기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즉, 십몇년전 그때 당시의 신입직원은 이제 너무나도 현재의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십몇년의 시간을 마음만 먹으면 큰 공부나 업무적인 고민 없이 고참 직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정법으로 썼지만 상당부분은 현재의 사실인 것 같다.
지점에 있는 영업력(?) 좋으신 차장님과 몇가지 고객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심도깊게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럴수가 업무를 너무나도 모르고 계신 것이다.
실무적으로 본인이 직접해야하는 것들에 대한 것은 경험적으로 몸에 베어있어 잘 알고 계셨지만, 조금만 이론적인 부분이나 판단의 영역으로 가면 그 이해의 수준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니, 후배들에게 선배가 업무를 진행하면서 근본적인 업무의 본질적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지게 된 것 같다.
사실 알려주고 싶어도 본인도 모르는데 무엇을 알려줄 수가 있겠는가? 결국 어디에 전화하면 해결할 수 있는 지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과거에는 일반 행원과 책임자(은행에서는 보통 평사원을 넘어 과장이상 되는 사람은 책임자라고 부른다)의 구분이 확실해서 일반 행원들이 창구에서 주로 일을 하면 책임자는 그 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는 지 검토하면서 결재를 하고 조언을 했다.
또, 고객과의 마찰이나 민원이 있는 경우에는 그 책임자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었다.
그런데 원스탑뱅킹이 보편화되고 창구의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정책 하에, 지금은 책임자, 일반행원의 구분이 없어졌고, 책임자도 모두 같은 창구에 일반행원들과 나란히 앉아서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상호간에 영업실적을 가지고 서로 경쟁체계를 만들어 같이 평가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업 우수직원을 뽑으면 직급별로 뽑는 것이 아니라 창구의 업무에 따라 뽑기 때문에 내가 영업 우수직원이 되려면 옆에 있는 선배나 후배를 실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옆 자리에 있는 후배 평직원이 차장님에게 업무 결재를 올리는 동시에 나의 경쟁자가 되어 경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잘 지도하고 알려줘야 하는 후배이기도 하지만 결국 승진하고 급여 더 받으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자 관계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옆 창구에서 후배가 뭘 물어보려고 해도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다.
또 용기를 내어 후배가 선배에게 뭔가를 물어봐도 선배 입장에서는 내 거래 고객과의 거래에 방해가 될까 싶어 회피하기 일쑤다.
어려운 고객 사례를 놓고 선배 관리자와 상의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던 예전의 광경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렇다고 책임자의 의무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책임자는 여전히 일반 행원의 업무에 대한 결재를 한다.
하지만 책임자 역시도 창구에서 앞에 있는 고객을 응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실시간으로 전산화면을 통해 올라오는 업무처리 결재를 제대로 보고 고민하면서 결재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재하면서 오류를 발견하면 그걸 가지고 후배들에게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업무를 가르치던 시대는 이미 전설같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최근 대형 금융사고가 은행에서 많이 일어나면서 내부통제를 강화해야한다는 얘기가 너무나도 크게 나오고 있는데, 결국에는 이 부분이 잘못 끼워진 단추의 첫번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에피소드 02의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