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나는 시대에 뒤처진 바보인가?
앞의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오랜기간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가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은행의 관행이나 그런 것에 관련된 것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선배들의 충고(?)는, ‘은행업무는 초등학교만 나오면 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은행이 똑같은 상품에 똑같은 금리를 가지고 차별성 없이 영업을 했고, 예금과 대출이라는 단순한 업무를 단순반복적으로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 초등학교만 나올 정도면 은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었던 것 같다.
그런데 21세기 AI가 세상의 중심에 있고, 온라인 거래가 오프라인 거래보다 더 규모가 커진 세상에서는 많은 지식인과 미래학자들 그리고 경영학자 들이 말하는 조직구성원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창의성’이다.
그리고 다양한 창의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창의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지능이 높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생긴다고 한다.
또, 은행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로 순환근무라는 것이 있다.
직원이 한 지점이나 한 본점부서에 오래 근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횡령이나 고객과의 불법적인 결탁 등의 여러가지 금융사고를 예방한다는 이유에서, 금융감독원에서도 3년마다 근무 영업점을 옮기도록 가이드를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영업점에서 있던 직원이 본점으로 이동하고, 또 본점에 있던 직원이 영업점으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순환근무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 난다.
본점에서는 주로 기획이나 전략 들을 마련하는 일을 많이 하게되는데, 많은 직원들이 새로운 업무를 기획하거나 신상품을 만드는 일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어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데는 추진력, 기획력 등등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기존 시중은행에서 획기적인 신상품 또는 신서비스가 나오거나 해외의 은행들처럼 새로운 구조의 금융상품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
대부분 은행들이 미래를 바라보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영업을 더 확대할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무를 후선으로 빼는 것은 오류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영업점은 고객문제의 끝단만 접하고, 해결의 중간과정은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의 고민과 땀으로 습득한 지식이 아닌 그때 그때 검색과 조회를 통해 임기응변 식으로 고객을 응대하게 되는 것에 익숙해 지게된다.
그 다음 부터는 기초지식 부족으로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이 떨어지게되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데도 지장을 준다는 이론도 있다.
카카오은행이나 토스은행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이미 생활속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대부분의 은행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금융이라는 서비스는 오프라인 비대면의 소중함이 존재한다.
또 금융의 특성 상 우리사회의 여러가지 다른 일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집을 사려고 할때도 은행이 필요하고, 정부의 각종 지원이나 연금을 받을 때도, 또 나의 경우와 같이 주변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재산의 상속과 관련해서도 비대면 거래를 하는 은행은 필요하다.
은행은 물리적으로 만져지는 공산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양자역학이나 분자생리학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
은행은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우수한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또 과연 시대에 맞는 우수한 인재의 인재상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거기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 조직이 은행이라고 생각한다.
은행의 업무를 후선집중화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콜센터에서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업무 속도를 높이고,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오류율을 낮추면서, 그럭저럭 고객의 민원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미래 지향적인 금융업의 경쟁력을 본다면 언젠가 미래에는 이러한 것들이 또다른 비용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AI가 상당한 업무를 도와주고 심지어는 주도적으로 제안하기 까지 하는 시대에 그것을 되돌린다거나 옛날 영국의 러다이크 운동 처럼 그것들이 불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금융이라는 산업이 비용 효율화를 극대화하고, 상품판매 증대와 마진 극대화를 통해 이익을 늘리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금융솔루션을 제공하면서 금융소비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 우량한 금융소비자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데 더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과 더불어 AI가 추천하는 여러가지를 바르게 판단하고 또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과 창의성이 당분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바람에서 하는 소리다.
이제 은행 영업점에 가면 왜 직원들이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마우스를 계속 스크롤하고 있는지,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 한참의 시간을 통화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직원이 보이면 그래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도 어찌보면 시대적 흐름의 희생자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우선적 후선업무화 보다는 영업점에서도 일정정도 역할을 하면서 일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이 생기도록 업무 프로세스를 잘 배치하고 인력을 조금 더 여유있게 운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AI를 활용한 AI 은행원을 각 은행들이 앞다퉈 도입한다고 한다.
물론 비용도 줄이고, 또 어찌 보면 인적 오류를 줄이고, 앞서 얘기했던 ‘장사치’사장님의 모습과 같이 본인 실적만을 위해 영업하는 폐해가 AI은행원 제도가 도입됨과 동시에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부족하고 미숙해도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눈을 읽어서 그 속을 헤아려 주는 금융을 AI에게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고도의 알고리즘에 의해 고객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겠지만, 그 어떤 예외와 유연성이 인정되지 못하고 원칙만이 존재하는 ‘차가운 금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사람을 잘 가르치고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제도를 잘 보완 하고 정비해서 ‘따뜻한 금융’을 만들어 보는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떤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는 정말 시대에 뒤쳐진 바보인가?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두번째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고 다음에는 3번째 에피소드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