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장사치'라는 말.
한국말에 ‘장사치’라는 말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을 얕잡아 깔보듯이 하는 말로 보통 쓰이곤 한다. ‘치’라는 접미사는 대체로 별로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된다. 원래는 무리나 집단을 의미하던 뜻인데 지금은 비하의 뜻이 많아졌다. 그리고 접미사는 아니지만 ‘양아치’에서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치’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부정적 느낌을 느끼게 된다.
그런 ‘치’라는 말을 굳이 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붙였을까?
유교사상이 세상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장사하는 사람을 업신여겼다고 한다.
숭고한 이상을 쫓고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던 양반, 사대부의 입장에서 보면 돈이라는 것을 쫓는 물욕(物欲) 가득한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속물 그 자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돈을 위해서는 간교한 언변과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듯한 표정연기를 해가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여겼을 리 만무하다.
지금으로부터 한참 옛날, 내가 대학 1학년때 여름방학 1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철가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말은 철가방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가방 하면 떠오르는 중국집의 배달원은 아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돌솥비빔밥을 시그니쳐 메뉴로 하고 메밀국수, 만두, 다양한 국수와 찌개를 파는 분식집과 한식집의 절묘한 콜라보 영역에 있던 나름 동네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그 식당은 5층 아파트가 대단위로 들어선 어마어마하게 큰 여러 개의 단지가 있던 아파트 촌(물론 지금은 재건축이 되었다)의 중심상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를 뜨겁게 달궈진 무거운 돌솥비빔밥이 들어있는 철가방을 양손에 들고 혹시나 돌솥이 식을까 봐 한걸음에 내 달리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헉’하고 차 오르는 것 같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배달을 하고 또 식당정리 및 주방보조까지 하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식당에서 일하게 된 것은 사실 다소 이상한 사장님의 철학에 따른 금전과 그 밖의 매우 훌륭한 처우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그렇다고 잘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거무스름한 얼굴 사이에 약간의 웃음이 보이는 착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귀염 페이스의 소유자였다.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배달 주문을 받고 홀 내 정리와 계산을 담당했는데, 나름 단골이 많아 꽤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끊임없는 배달 주문으로 나 역시 쉴 틈 없이 바빴었다.
사장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정형편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 후 종로에 있던 그 당시 유명한 식당에 찾아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자기 식당을 차려 성공한,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은 희한하게도 배달이나 허드렛일 하는 사람을 꼭 대학생으로 채용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약 1.5배 정도의 급여를 기꺼이 지급해 주었다.
좋게 얘기하면 공부하는 학생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겠다는 사장님과 식당 차원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이기도 했고, 식당에 방문하는 단골손님들에게 좋은 대학 다니면서 학비 벌려고 열심히 일하는 착실한 시대의 인재라고 아르바이트 학생을 소개하면서, 은근히 본인의 인품과 이타적 성향을 드러내는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일이 조금 몸에 익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나는 뒤에 실린 배달통에서 솔솔 풍겨져 나오는 음식냄새를 맡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시원한 바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리바리 몸치인 나를 마치 특별한 인재라도 되는 것처럼 대우해 주는 사장님이 좋았다.
사장님은 하루 일과 중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이 되면 나를 데리고 식당 뒤편 쓰레기장 쪽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그때는 사장님의 나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 대부분은 나의 대학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학교는 어떻느냐, 수업은 어떻느냐, 미팅은 해봤냐 등등.
그때 내가 느끼기로는 사장님은 본인이 가보지 못한 대학이라는 곳에 대한 동경과 대학생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한편으로는 대학생을 고용해서 특별대우를 해줄 정도로 성공한 본인의 인생에 대한 우월감을 만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장님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도 받고, 나름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모습(물론 나에게 사회공헌을 이행하는 것이라 더 크게 느껴지지만)으로 나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그분의 진실된 참모습을 보기 전에는 그랬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