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5)

⑤ '저 못믿으세요?'가 소환한 서글픔

by 고정금리

Episode 01.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

⑤ '저 못믿으세요?'가 소환한 서글픔


(에피소드 01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은 총 6개의 글로 이루어 지고 모두 이어진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5번째 글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년전이지만 나에게는 보리차 사장님 만큼이나 많은 생각이 진한 기억으로 남는 날이 있다.

당시의 금융 환경은 지금처럼 소비자 보호 체계가 촘촘하지 못했고, 현장의 판매 방식 또한 거칠었다. 다행히 지금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이런 불완전 판매가 발붙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 과도기적 시점에 내가 목격한 장면은 여전히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10년이 넘게 본점에서 근무 했던 시간이 지나, 정말 오랜만에 영업점에 돌아간 무늬만 은행원인 나는 많은 것에 적응을 해야만 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펀드와 보험 상품에 영업점의 운명이 걸린 듯이 강조되었고, 직원별로 각자 담당 분야를 정해서 KPI 달성을 위해 서로서로를 독려하고 또는 질책을 하고 있었다.


난 역시나 어리바리 주변인이었다.


내가 일하게 되었던 지점은 관공서 건물에 들어 있는 지점이었는데, 건물에 일하는 사람이 매우 다양했다. 그중 남자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여사님 한 분이 계셨다.

지점 첫 출근날 지점에 가기 전 들른 화장실에서 어찌나 크게 허리를 굽혀 나에게 인사를 하는지 깜짝 놀라 얼굴을 알아보게 되었다.


사실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남자화장실에서 여자분에게 받은 인사라는 것이.


한 6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셨는데,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지는 않으셨지만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얼굴에 깊은 주름이 그 또래의 다른 분들에 비해 많으셨고, 양복에 넥타이까지 챙겨 입은 샌님 같은 내가 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정중하게 인사를 하셔서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역시나 어리바리하게 은행에서 업무를 잘 모르다 보니 이것저것을 열심히 보고, 익히고 있을 때였는데, 그 여사님이 번호표를 뽑고 지점 객장에 기다리고 계셨다.

난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하고 싶어서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때 직원 한분이 번호표 호출을 했고 그 여사님은 그 자리로 가서 앉으셨다. 괜히 관심이 생겨서 귀를 쫑긋 세우고 어떤 업무를 하러 오셨는지 나도 모르게 엿듣고 있게 되었다.


그 여사님은 오늘 예금만기가 되어 오신 것이었다.

2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만기였는데, 가진 사람에게는 적은 돈 일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큰 돈일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 여사님의 외모로 보기에 그분에게는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대단한 분이네, 급여가 많거나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착실한 분이신가 보네.’


그 여사님은 원금에 이자에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던 조금의 돈을 더 보태 정기예금을 재 가입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그 돈을 조금조금씩 늘려 오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사님은 큰 욕심이 없으셨던 거 같았다. 그냥 계속 불려 나가는 사실 자체가 좋으셨던 것 같고 그 돈을 가지고 종잣돈 삼아 더 큰돈을 만들려는 의지도 내가 보기엔 없었다.


그런데 직원은 달랐다. 여사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ELF(Equity Linked Fund) 펀드 상품을 팔기 위해 마치 목표물을 정한 독수리처럼 계속 여사님을 몰아붙였다.


그랬다.

아침에 지점의 KPI를 담당하는 분석담당 부지점장님이 지점장님과 함께 근엄한 표정으로 이번 주에 채워야 하는 펀드와 보험을 규모를 직원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다소 험악한 분위기 연출되었던 것이 영화의 플래시 백 장면처럼 생각이 났다.


“그 돈 같이 사는 우리 딸이 생활비로 조금씩 주는 거 모은 거라서 나중에 모아 놓았다가 다시 딸내미 결혼할 때 줄 거라서 뭐, 투자고 뭐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더 불려서 따님한테 드려야죠. 사모님, 홍콩에 있는 주가지수가 지금 좋거든요. 그거랑 독일에 있는 주가지수랑 같이 연동되어서 수익이 결정되는 건데. 별일 없으면 6% 정도 받으실 수 있어요. 그냥 정기예금하면 3% 중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아깝잖아요?


공방은 계속되었고, 완강하게 여사님은 거부의사를 얘기했다.


“아이코, 난 복잡한 거 몰라요. 주가지수 이런 거 난 몰라서, 위험하고 그런 거, 투자 그런 거 하기 싫은데. 그거 괜히 본전도 까먹으면 안돼요. 난 그런 거 싫어요.”


요즘이야 투자가 대중화 되어서 펀드 같은 투자상품에 거부감이 덜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많은 분들이 불안감과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던 때였다.


“고객님, 이거 마이너스 날 일이 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여기 지점 와서 지금 2년째 이거랑 거의 같은 거 판매했는데, 손실 난 적 한 번도 없고요, 이거 가입한 다른 분들 저한테 다 고맙다고 난리예요.”


그러다가 내가 생각하기 싫었던 식당의 과거를 소환시키는 말들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거 원금보장 되는 거예요? 투자 그런 거는 원금 보장이 안되잖아요?”


“여사님! 저 못 믿으세요? 지금 홍콩 주가나 독일 주가 보면 손실이 날래야 날 수가 없어요. 원금보장이나 마찬가지예요. 3개월만 지나면 그때 상황에 따라서 금방 끝날 수익 나고 만기가 될 수도 있는 거라서. 이건 거저 먹는 거예요. 고객님 저도 이거하고 있고, 직원들도 다 하고 있어요. 위험한 거면 저부터 안 해요. 제가 보증 설 테니까 저 믿고 해 보세요.”


결국 직원의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여사님은 그 상품을 가입하기로 했다.

사실 아직 영업점 물이 들지 않아 순진무구한 상태에 어리바리 그 자체였던 나로서는 충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직원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ELF는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겪은, 홍콩H지수(HSCEI) 하락에 따라 대규모 손실이 난 바로 그것과 거의 같은 상품이다.

아무리 여러 개의 ELS를 펀드로 엮어서 다시 구조화라는 방식으로 재편성을 하였다고 해도, 기초자산 상품이 하락하면(홍콩H지수가 하락하면) 이론적으로 원금을 모두 까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홍콩H지수(HSCEI)가 영원히 오르기만 할 것이고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 당시 그 직원은 심지어 홍콩H지수가 뭔지 그런 설명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냥 ‘홍콩이 한국보다 훨씬 더 금융이 발달한 곳이라 절대 잘못될 일이 없다’는 근거 없는 공허한 말만 하고 있었다.

사실 홍콩H지수는 홍콩에 상장되었을 뿐이지 결국은 중국본토 기업의 주가에 연동되는 것이다.

그 여사님께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거라고 하면 과연 상품에 가입했을까?


심지어는 투자상품을 가입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투자성향이라는 것을 미리 분석해서 일정 정도 이상의 투자에 적극적인 성향이 나와야 펀드상품 가입이 가능한데, 그 직원은 미리 여사님께


“이거 가입하려면, 이 가입 양식에 여기 여기 여기 체크하셔야 하니까 여기 여기 체크 표시해 주세요” 라면서 여사님의 투자 성향을 높이는 작업도 서슴지 않고 해 버렸다.


지금은 태블릿 PC와 녹취 시스템 등을 통해 고객의 투자 성향을 엄격히 확인하고 가입 절차를 투명하게 관리하지만, 당시 일부 현장에서는 KPI라는 눈앞의 숫자를 위해 절차적 정당성이 희생되기도 했다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듣고 보면서 십수 년간 잊고 있던, 돌솥비빔밥집 보리차 사장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급 소환되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럼요, 제가 아침 일찍 와서 매일매일 하루에 마실 만큼 좋은 볶은 보리로 차를 끓여 놓습니다. 시원하게 드세요”


성공적으로 여사님에게 투자상품 판매가 끝난 다음, 그 직원은 내부 사내 메신저 지점 단체방에 너무 나도 자랑스럽게 약간은 거들먹거리 듯이 판매완료 사실을 남겼다.


‘ELF 2천5백만 원 판매. 예상손익 00만 원. 아 끝까지 가입 망설이는 고객 설득하느라 점심 먹은 에너지 다 썼음.’


‘와 짝짝짝~~. 00 과장님 수고 많았어요.’


‘오늘 저녁은 두배로 드세요~~. 아침에 결의를 다지니 역시 잘 되는 구만~~’


한동안 칭찬과 격려 릴레이가 단체 대화방을 가득 채웠다.


(다음으로 에피소드 01 마지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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