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6)

⑥은행은 기본적으로 장사하는 곳이다.

by 고정금리

Episode 01.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

⑥ 은행은 기본적으로 장사하는 곳이다.


(이전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글이 episode 01.의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


여전히 은행의 영업현장에 영업직 직원으로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저 실적이라는 부담과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실적에 도움되는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으로 꾸며대고도 잘못됨을 느끼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게다가 난 그 안타까움을 티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런 거짓말을 한 직원을 칭찬하고 격려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적 어느 작은 식당에서 그 의미를 고민했던 그 단어.


‘장사치’

그리고 그 시절의 그 사장님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렇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장사하는 곳이다.

폐쇄적인 곳이기도 하고, 특히 이 얘기를 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에는 특히 정보가 일반대중에 많이 오픈되어 있지 않아서, 은행 직원이 ‘장사치’ 기질을 가감 없이 보여줘도 그런 행동이 잘 먹히던(?)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그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라임사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 홍콩H지수 폭락에 따른 ELS 사태 등을 거치면서 소비자보호나 권익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제도적으로도 고객 성향 분석이 실질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일정 조건이 되면 고객의 가입의사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녹취도 하게 된다. 그리고 직원 스스로도 의식과 인식이 많이 바뀐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형식적인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감독당국에서 불완전판매를 확인하기 위해 각 지점에 몰래 방문하여 시행하는 미스터리 쇼핑이라는 것이 있다.


지점에 고객인 척 가장하고 와서 투자상품을 가입하는 것처럼 상담을 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딱 보면 그 분이 미스터리 쇼핑 하러 온 분인지 바로 안다(그 와중에, 정말 눈치 없는 직원은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분이라도 딱 보면 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펀드 가입을 위해 상담을 해달라고 오는 분도 드물뿐더러, 일반 고객들이 그렇게 펀드 용어나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본점에서는 미스터리 쇼핑에 대비해 영업점 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 직원들 모두가 완전판매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미스터리 쇼핑 자체에 대비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미스터리 쇼핑 대비 매뉴얼과 스크립트가 따로 있어서 미스터리 쇼핑 온 쇼퍼에게 그 스크립트 대로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은행 시스템에 띠워 놓고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결국 평상 시 완전판매를 잘하기 위해 근본적인 부분을 순진하게 준비 하기보다는, 미스터리 쇼핑이라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쪽집게 벼락치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도 조금 심하게 얘기하자면, ’장사치’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씁쓸한 마음이다.


물론 고객들도 이제는 투자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다는 많이 없어진 상황이고 적극적으로 미국 주식이나 ETF 등에 투자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투자를 하지 않고서는 자산을 불리기가 쉬운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은행에서 까지 투자상품에 목메는 것이 맞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당연히 고객이 원하는 경우에는 고객에게 잘 맞는 상품을 찾아 추천해 드리고 상담해 드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은행의 니즈에 의해 고객의 은행거래 목적이나 향후 사용처 등을 고려하지 않고, KPI라는 평가 기준 우선으로 고객보다는 은행을 먼저 생각하는 영업, 그 것은 내 기억 속 그 '보리차 사장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장사치’의 행동에 가까운 것 같다.


사실 투자상품과 보험상품 판매에서부터 발생하는 은행 수익은 전체 이익의 10% 미만이고 그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도 않다.

물론 예금과 대출의 차이인 예대마진이 점점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투자상품과 보험상품의 이익 비중이 낮아지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은행 내에서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그 비중이 낮다.


거기에 미스터리 쇼핑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교육 노력, 투자상품이나 보험상품 판매를 위해 직원들이 따야 하는 자격증 관련 비용, 거기에 가장 큰 비용 중 하나인 라임이나 ELS사태와 같이 불완전 판매에 따른 배상판결 등의 비용을 감안하면 과연 은행에서 투자상품을 취급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은행은 지금도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투자상품이나 보험상품을 일단 밀어붙이기 식으로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권유할 “가능성”이 계속 존재한다.

왜냐하면 수익을 바로 지금 실현시켜서 평가에 유리하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장사치’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면 그 구성원들이 그 환경에 무감각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환경에 완벽 적응해서 정도(正道) 영업을 하기 보다 ‘장사치’ 행동을 잘해 실적이 좋은 사람을 우수한 인재라고 인정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런 사람을 본점의 영업 기획하는 자리에 옮겨 놓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은 이런 경우 그 기획자에 의해 ‘장사치’ 모습을 더 많은 사람이 따라 하도록 ‘장사치’의 노하우가 전파되고 확대 재 생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왜냐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본인의 성공방식을 계속 더 발전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위의 사례는 상당기간 지난 과거의 일이고, 현재는 소비자보호라는 큰 가치의 중요성을 은행 스스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깨닫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이제부터는 은행에 가서 예금 상담을 하시게 된다면 (물론 요즘은 지점 방문보다는 온라인 거래가 더 많지만) 환하게 웃으며 고객을 위해 모든 고민과 걱정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는 정직해 보이는 말은 한 반정도만 믿으셨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본의 아니게 이미 ‘장사치’가 된 직원일 수도 있으니까.


설마 은행이 신뢰를 먹고 사는 곳인데,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를까? 하실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겠다.


퇴직연금이라는 것이 있다.

은행이 퇴직금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회사를 대신해 수행하고 있는데, 은행의 거래처 업체에게는 DC형 방식(확정기여형-매년 회사가 개인에게 퇴직금 해당액을 은행 퇴직금계좌에 지급하고 개인이 운용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은행입장에서 향후 거래 및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연말에는 대대적으로 기존 DB형 방식(확정급여형 - 퇴직 시점까지 회사 책임으로 매년 적립만 하고 퇴직 시에 직원에게 퇴직금 정산 및 지급하는 방식)으로 퇴직연금을 가입한 기업을 DC형으로 전환하라고 적극적인 영업을 한다.


DB, DC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무엇이 더 유리하고 맞는 것인지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고객에게 DC형이 좋다면서 거래 기업에 권유하는 은행이 정작 자기 회사 직원들의 퇴직연금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을까?


바로 DB형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DC형이 그렇게 좋아서 연말만 되면 어마어마한 영업 드라이브를 걸면서 권유할 정도면 은행도 당연히 DB형이 아닌 DC형으로 가입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요즘은 퇴직금 운영에 대한 개인들의 관심이 커지고 ETF등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면서 고객 회사와 직원들 스스로 DC형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은행은 남에게 권하는 것과 본인의 속마음이 일단 일치하지는 않는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그 자체다. 어쩌면 그것이 은행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은행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은행은 원래 자본주의라는 태생적 틀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통화를 공급하고, 또 원래 남의 돈으로 돈을 중개하면서 중간에 마진을 얻는 비즈니스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해왔다. 이는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이 못되고 돈만 밝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들도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 않겠는가?

다만 은행이라는 환경,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회사라는 형태의 법인격이 갖는 한계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씁슬함이 묻어 있는 그 단어, ’장사치’가 되도록 강요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난 서울의 어느 외진 동네 식당에서 어릴 적 느꼈던 그 사장님의 모습을 현재의 은행에서 가끔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금융감독당국의 압력과 은행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장사치 모습의 정도가 예전보다 엄청나게 많이 줄었고, 약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면, 그렇게 그렇게 관행 아닌 관행으로 이어져온 방식들이 아직도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은행에 출근해 업무를 하는 그 어느 순간 ‘장사치’의 모습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니 모두 은행가실 때는 한 번쯤 눈을 크게 뜨고 조심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오해하지 마시라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장사하는 곳이다. 원래 그렇다.


장사하는 곳에서 일하는 일꾼이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에는 Episode 2 '은행업은 사람 비즈니스다' 첫번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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