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은행업은 사람 비즈니스다.(1)

①슬픔의 앞을 가로막은 모니터

by 고정금리

Episode 02. 은행업은 사람 비즈니스다.

① 슬픔의 앞을 가로막은 모니터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적지 않은 나이셨지만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시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고, 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어렵고 힘든 항암치료까지 모두 견뎌 내시고 다시 건강해 지신 터라, 아버지의 죽음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허망함에 싸여 있었지만, 돌아가신분은 돌아가신 분이고 남은 사람은 계속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또 돌아가신분의 흔적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로 남게 된다. 그런 것중 하나가 바로 재산에 대한 정리이다.


요즘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어느 금융기관에 얼마의 예금이 있고, 어느 보험회사에 얼마의 보험이 들어져 있는지 한번의 조회 신청으로 일괄조회가 가능하다. 전세계 어느 곳보다 그런 행정 서비스와 관련된 것에서는 대한민국이 최고인 것 같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신청한 것에 대한 조회결과가 나오면 그 다음에는 각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면서 가능한 금액을 해지해야 한다.

금액이 크거나 상속 대상자가 많으면 챙겨야할 서류도 많고 은행에 가서 이런 저런 절차도 복잡해 진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생을 부자(富者)로 사셨던 분은 아니고, 은행거래는 딱 필요한 현금정도에서 보관정도만 하신 분이다 보니, 그리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일이어서 휴가를 내고 상속 처리를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거래하셨던 은행 지점을 방문했다.


가야할 곳이 몇 곳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급했다.

노년을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생활하셨던 분이셔서, 지역농협도 거래하시던 은행 중 하나라 그 지방 도시에서 은행일을 보기로 마음먹고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휴가를 내고 서울을 떠나서 가는 것이라서, 빨리 끝내고 돌아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급했던 것 같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객장은 그리 붐비지 않았고, 대기 없이 바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창구에는 앳되 보이는 여성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20대 중반 내지 후반 정도로 신입직원아니면 들어온지 얼마안되는 신입에 가까운 직원 처럼 보였다.

그 직원은 아주 수줍은 얼굴로 살짝 인사를 하더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무슨 업무를 할 것인지 물었다.


예전 내가 은행에 들어갈때는 은행 전반적으로 CS(고객만족, Customer Satisfaction)가 한창 강화되어 은행의 핵심 역량처럼 강조 되었던 때라 신입직원 연수를 받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연습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MBTI가 극 I인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은행에 들어오는 구나’ 라는 혼자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은행을 오래 다닌 은행원이었지만 사실 다른 은행 창구에 앉아 업무를 보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았기때문에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면서 더 집중을 하면서 직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단 모니터암(arm)에 달려있는 모니터가 직원 바로 앞에 나와 있어서 나와 그 직원 사이에는 장벽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은행 창구에서 처음 일 하게 되었을 때, 고객과의 아이컨택이 중요하다면서 허리를 비틀고 창구 모서리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트위스트 된 자세로 일하던 것이 생각이 나면서, 모니터에 가려 직원의 얼굴이 보일듯 말듯 한 것이 조금 어색하게 생각이 들었다.


‘이런 꼰대를 봤나.’


예전 신입직원 시절 허리를 비틀고 앉다 보니 허리가 가끔 욱신욱신 아팠던 생각을 하면 지금 모습이 당연한 건데, 옛날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을 얘기하고 관련 서류를 신분증과 함께 챙겨서 직원에게 전달했다. 나에게 서류를 전달받은 그 직원은 신분증과 내 얼굴을 한번 대조하듯이 휙 둘러 보더니 서류를 넘기면서 훑어봤다.

그러고 나서 아무말 없이 서류를 책상위에 내려 놓고는 바로 모니터를 바라 보며 키보드와 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버지 거래 정보를 조회하나 보다 싶었고, 다른 불필요한 말 없이 바로 일을 하니 빨리 끝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왠 걸, 아무런 설명이 없이 계속 모니터를 응시하면서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열심히 안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뭔가 진도가 나가는 것 같지도 않은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계속 검색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약간 시무룩해 보이는 얼굴로 마우스를 계속 스크롤 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또 키보드를 다닥다닥하며 또 뭔가를 검색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내 무엇인가를 찾았는지 뚫어지게 모니터를 보더니 이번에는 벌떡 일어나서 창구너머 뒷편에 있는 프린터에서 방금 출력된 몇장의 종이를 가져와서 나에게 작성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보니까 신청서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상속인이 나타나서 돈을 달라고 요구하면 은행은 책임이 없고 당신이 정당한 서류 가져와서 상속인이 맞다고 해서 돈을 준 것이니 당신 책임이다 뭐 그런 것이었다.

그 은행에는 아버지 명의의 입출금 통장과 소액의 정기예금이 있었는데 현재 대부분의 은행에서는 업무처리의 간소화를 위해 원금기준 합계액이 300만원 이하의 예금은 모든 상속인의 동의가 없어도 상속인 1인이 방문하여 요청하면 바로 해지를 해준다.

내가 확인한 그 은행의 아버지 예금은 300백만원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쉽게 해지해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 직원은 한참을 무엇인가를 찾아보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전화기를 붙잡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통화가 바로 연결이 되지 않는지 한참을 기다리던 직원은 한참후에야 통화 연결이 되어 급하게 전화 상대방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 지금 상속업무 처리 중인데요. 고객번호 부를께요. 지금 상황이 …”


밑도 끝도 없고 두서(頭緖)도 없이 툭 내 뱉는 말이었다.

상대방은 그 말을 어떻게 알아 들었을까? 한참 동안을 전화기 건너편 상대방이 내 앞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에게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또 설명하고 하면서 원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고,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뭔가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아무리 영업점 업무 경력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나 역시 은행에서 눈치밥을 먹은 기간이 오래인지라, 대략 그 당시의 통화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원래 예금을 중도해지 하면 처음 약정된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중도해지이율(거의 이자가 없다)이라는 것을 적용하게 되어 있는데, 사망한 사람의 상속에 대해서는 ‘특별중도해지’라고 해서 해당기간 만큼 처음 약정했던 이자를 주게 되어있다.

그런데, 아마도 직원이 이 부분을 순간 놓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해지를 했고, 뒤 늦게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특별중도해지로 하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잘 못찾겠는지 직원 업무를 알려주는 직원용 콜 센터 같은 곳에 전화해서 문의를 한 것 같았다.


결국 전산 조작 방법까지 물어서 어떻게 다시 처리를 했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이자가 조금 늘어나서 해지 후 금액이 300만원이 넘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또 직원 콜센터에 전화해서 원금은 300만원 미만인데 이자가 나와서 300만원이 넘으면 상속인 1인이 와도 예금을 지급해 줘도 되는지를 묻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원금기준 300만원이기 때문에 이자가 나오는 것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다가 난 씁쓸함이 느껴졌다. 사실 창구업무를 하고 있지 않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그 직원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은행원이 아니더라도 은행에 어떤 업무를 하러 휴가까지 내고 갈때는 보통은 인터넷 검색이나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또 관련된 블로그 등을 찾아보면서 기본적인 업무 관련 정보는 미리 학습을 하고 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직원은 고객보다도 업무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더 나를 실망시킨 것은 그 분의 태도였다.

마치 콜센터에서 상담을 하는 직원에게 다소 무례하게 다그치듯이 업무를 알려달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전산처리를 모르니까 거의 대신 어디어디 클릭을 해야하는 지를 알려달라고 어린아이 보채듯 조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원격조정으로 콜센터 직원이 내 앞에 있는 직원의 PC를 다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는 정말 힘없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약간은 기운없이 무기력해 보이던 직원이었는데, 콜센터 직원에게는 가차없이 냉정하게 따박따박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자기가 업무를 몰라서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어떻게 무례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가’.


그러고 나서 옆쪽 창구들을 쭉 둘러봤는데 상당히 많은 자리에서 직원들이 조금전 내 앞에 있던 직원과 비슷하게 전화를 하면서 업무를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하여 한참의 시간이 걸려 업무를 끝내고, 다른 은행에 또 이어서 방문하였는데, 이전 은행보다는 나았지만 다른 은행의 상황도 별반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분이셨는데 아마도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셨다. 그런데 이분도 여지 없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분은 이전 은행의 여자분과 같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이 분은 더 기초적인 내용을 문의하시는 듯 했다.


물론 그 남자분이 나와 같이 은행 생활의 대부분을 본점의 일반적 은행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해 왔던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규정이나 방법을 좀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내 얘기가 끝니기가 무섭게 바로 전화기를 잡고 업무를 물어 봤다. 그리고 그 은행도 창구를 둘러보니 이전의 은행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많은 직원들이 전화로 업무를 문의하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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