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키워드로 보는 개인심리학 실천법
지식은 활용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제 신념 중 하나입니다. 주변에 책은 많이 읽는데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지식을 삶에서 활용하지 않기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지식으로 채울 수는 있는데 삶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심리학이 아닐까 합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마음의, 생각의,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학문이죠. 하지만 과학의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굉장히 다양한 것에 영향을 받고 그만큼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심리학은 삶에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적합한 이론이 나에게는 안 맞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이론은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입니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프로이트가 아닌 다른 인물의 심리학을 다루고자 합니다. 바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입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심리상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둘은 원래 매우 가까운 사이였죠. 아들러는 프로이트가 주축이 된 ‘빈 정신분석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둘은 갈라서게 됩니다. 인간의 심리를 해석하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차이 중 하나가 ‘과거’에 대한 해석입니다. 프로이트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행동을 만들었다고 해석했습니다. ‘트라우마’trauma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아들러는 달랐습니다. 그는 과거의 경험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경험도 그 자체로 성공의 원인이 되거나 실패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서 쓸만한 고통의 기억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즐겁고 잘 되고 있다면 기억하지 않았을 일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의미는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과거를 원인으로 바라봤다면, 아들러는 과거를 자원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지금 나의 심리상태를 해석하는 데에도 차이를 만들게 되죠.
프로이트는 지금 내게 일어난 심리 현상의 원인이 과거의 사건에 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러한 현상을 일으켰다고 해석하죠.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인론’, 아들러의 이론을 ‘목적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누구의 이론이 맞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러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중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면 화를 내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왜 화를 낸 걸까요? 원인론에 따르면 그들이 화를 낸 이유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물론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든 것이 화를 내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인 이유인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화는 낸 이유의 이면엔 ‘말을 듣게 한다.’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화를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거죠. 이처럼 감정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 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는 감정의 목적 또는 행동의 목적만 안다면 ‘내가 왜 그랬지?’하는 것들을 앞으로의 삶에서 더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시길 제안합니다. ‘나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지속해서 활용한다면 습관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다른 심리학과 다른 점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아들러가 제시하는 길은 매우 단순합니다. 바로 ‘공헌’입니다. 아들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의미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의미란 본질적으로 타인의 삶에 공헌할 수 있을 때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잘못을 범하기 쉽다.”
공헌은 단순히 의미를 찾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중 하나는 소속감입니다. 소속감은 ‘내가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라는 느낌이죠. 우리는 소속감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삶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소속감은 필수입니다. 행복은 불안 속에서 꽃피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속감은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공헌할 때에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라고 느끼기 위해선 ‘나는 여기에 있을 가치가 있다.’라는 느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소속감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필요한 존재다.’, ‘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라고 느낄 때 존재 가치를 실감합니다. 많은 사람이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며 행복을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물론 이에 ‘그래 공헌하는 것 좋아. 중요하지. 하지만 나 자신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아들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나의 견해로는 잘못되었으며, 그런 생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겉치레일 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공헌하기를 원하고 자기의 모든 감정이 이 목표로 향해진다면, 그는 그 공헌을 위해서 당연히 자기를 가장 좋은 상태에 두게 되어 있다.”
아들러는 인생의 길로 공헌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공헌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죠. 그러나 공헌이라는 가치를 삶에서 실천한다면 인생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다른 심리학과 비교하여 보다 실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목적론과 공헌은 더욱 실용적이며 실천 가능하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수영에 대한 교본을 본다고 물속에서 바로 헤엄칠 수는 없지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목적론과 공헌은 삶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의 문제니까요. 선택만 하면 됩니다. 활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저는 전자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