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긍정적일까?
본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7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iPhone’아이폰을 발표했습니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우리는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며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SNS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되었죠. 이처럼 기술의 발달은 언제나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대부분의 기술은 인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선의가 언제나 선한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듯, 기술의 발전 또한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기술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블랙 미러>Black Mirror입니다. 시즌3부터 ‘Netflix’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시작한 <블랙 미러>는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대표하는 콘텐츠 중 하나입니다.
<블랙 미러>는 지난 6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시즌5가 공개되었습니다. 시즌5는 게임 속 캐릭터와 모든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미래를 다룬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SNS를 다룬 ‘스미더린’, 뇌와 관련된 기술을 다룬 ‘레이철, 잭, 애슐리 투’ 총 3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에도 옴니버스 형식을 취했죠.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꼽자면,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선택할 겁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서는 내가 게임 캐릭터가 되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X’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게임에서는 단순히 게임 캐릭터가 되는 것을 넘어 게임 캐릭터와 모든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정신은 나지만 몸은 게임 캐릭터인 거죠.
<블랙 미러>에서는 오랜 친구인 ‘대니’와 ‘칼’이 각각 남자와 여자 캐릭터로 게임을 하다 게임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버리며 발생하는 갈등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게임 속 캐릭터와 모든 감각이 동기화된다면 우리는 게임 밖으로 나오려 할까?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게임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게임의 캐릭터만 바꿀 수 있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외모를 언제든 커스텀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게임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만약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서 나온 기술이 실현된다면, ‘셧다운제’가 전 연령대로 확대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조만간 보다 자세하게 한 편의 글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지난 5월 22일 ‘MBC’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는 ‘게임 중독, 질병인가 편견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중독’은 질병이지만, ‘게임’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처럼 연령에 따른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겠죠.
게임 규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대할 대상은 게임뿐일까?
<블랙 미러> 시즌5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스미더린에서는 SNS 중독으로 인해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가 죄책감에 시달리다 저지르는 사건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SNS는 처음엔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과 연결됨을 느끼기 위해 SNS를 이용했죠. SNS를 통해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SNS를 만든 회사들은 서비스 이용자가 자신의 앱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자주, 더 많이 SNS에 접속하고 머무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더 자주, 더 많이 SNS를 이용하도록 앱을 설계하고 있죠.
알고 있는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해결하면 되니까요. 진짜 문제는 무지無知에 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SNS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SNS나 스마트폰을 하게 되면 도파민이 나오게 됩니다. 도파민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할 때 나오는 화학물질이에요. 아주 중독성이 강하죠. 담배, 음주, 도박에는 나이 제한이 있지만, SNS나 스마트폰에는 아무 제한이 없어요. 이건 술이 가득한 냉장고를 10대들에게 열어주며 ‘마음껏 이용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여러 메시지를 던지지만, 제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애슐리 투’라는 로봇을 인기 가수 ‘애슐리 O’의 뇌를 복제해 만들었다는 겁니다.
에피소드 중 ‘잭’이 애슐리 투를 수리하다 성격을 제어하던 무언가를 제거하자, 애슐리 투는 몸만 로봇인 애슐리 O가 됩니다. 애슐리 투는 애슐리 O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물론 기억도 동일하게 갖고 있습니다. 몸만 애슐리 O였으면 애슐리 O가 한 명 더 존재하는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에피소드와 같이 우리 뇌를 그대로 복제할 수 있고, 그것을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와 같이 그대로 복제된 몸에 심어 넣을 수 있다면 둘 중 ‘나’는 누구일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 애슐리 O도 애슐리 투도 자신을 애슐리 O라고 생각하듯이, 복제된 나도 자신을 진짜 나라고 느낄 겁니다. 적어도 무언가 표시해놓지 않는 이상 주변 사람들은 누가 진짜 나인지 구분하지 못할 겁니다. 외면도 내면도 동일하니까요.
만약 이런 일이 실현되는 날이 온다면 내가 진짜 나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알고 보니 내가 복제인간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부자들은 부모가 죽음을 맞이할 때, 젊고 건강한 육체에 부모의 뇌를 복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게 좋은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블랙 미러>는 이에 매우 합당한 콘텐츠죠. 네티즌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아직 <블랙 미러>를 보지 않은 것 자체가 행운이다.”
기술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겁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겠죠. <블랙 미러>는 기술에 대해,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나 <블랙 미러>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기술을 만드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결국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또한 우리 인류의 선택으로 결정될 겁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는 유토피아일까요, 디스토피아일까요? 우리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