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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여행자 May 28. 2024

매운 맛에는 의리가 있다.

후추의 매운 맛 들어봤어? 대구떡볶이

김과장  오늘 회식입니다. 끝나고 남아요.
이차장  박과장. 도망가지 말고 남아.


오후 4시가 넘어갈 무렵. 거래처에서 내일까지 해주세요가 밀려오는 시간. 30명 남짓한 조그만 회사의 속칭 간부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청일점인 나는 도망가지 못하게 대화방에 박제 됐다.

분명 거래처의 거벽,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도 거대한 벽처럼 튕겨는 담당자가 기염을 토한 게 분명했다. 이럴 때는 같이 먹고 마시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직장이란 전선에 함께 선 동지애였다.

하아. 뭘 먹나.

이럴 땐 셋 중 하나다. 죽을 것 같이 느끼한 것. 녹아 없어질 만큼 단것,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어갈 매운 것. 그중 매운 것이 최악다. 고통은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매운맛과 사투를 벌이던 시절, 대구출신 이차장님이 했던 말이 있다.

대구에는 후추가 잔뜩 들어간 떡볶이가 있어. 물론 맵지. 근데 서울 매운맛이랑 다른 맛이야. 먹고 싶다.

윤옥연할매떡볶이. 거뭇거뭇한 것이 후추다 (c)도심여행자

대구에 살게 되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평냉에 의정부나 장충동 계보가 있다면, 대구 떡볶이에는 후추맛, 카레맛, 고추맛 계보가 있다. 그중에서 대구의 상징 같은 맛이 바로 후추의 매운맛이다. 그 원점에 속칭 신천할매떡볶이, 유사 상호의 난립으로 공식 명칭은 윤옥할매떡볶이있다.

후추의 매운맛은 신세계였다. 고추의 매운맛이 혀가 아리는 맛이라면 후추맛은 입안에 든 공기가 매워지는 맛이라고 할까. 모두가 단맛을 찾는 시대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들의 단단한 매운맛은 이런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평냉처럼 문턱이 있다. 독특한 맛이 뇌리에 남아야 비로소 그리워하게 된다. 뭐야. 하고 놀란 혀에 후추맛이 학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 느끼게 되고 나면, 음식에 흩뿌려진 후추를 맛볼 때마다 떡볶이를 그리워하게 된다.


국물떡볶이의 성지 대구에 온다면 도전해 보시라. 어쩌면 인생떡볶이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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