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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여행자 May 29. 2024

1인 가구의 난제, 고기구이

마포가 아니라 봉화에서 돼지갈비라고요?

홀로 먹방을 즐기는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고기구이다. 회가 먹고 싶으면 한사라 떠오면 되고, 매운탕도 가져와서 끓이기면 되는 데 고기구이는 참 어렵다. 오븐에 구우면 청소가 귀찮고, 불에 구우면 기름과 냄새로 원룸 라이프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음식점에 가서 혼자 시켜 놓고 먹자니 참 애매한 메뉴. 그래서 본능적으로 고기구이를 피하게 되는 데 어쩌다 한번 고기가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단양에서 청계산을 지나 봉화로 갈 때도 그랬다. 인간이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잠이 쏟아질 정도로 고단할 때 달달함이 당기거나, 상사질 때문에 회사 때려치는 날 두고 보자고 속으로만 부글거릴 때 매운맛 떠오르거나, 몸이 허해졌다 느껴질 때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것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항상성 때문이다. 생물의 본능 덕에 굽이굽이 나타난 군것질 꺼리에 연신 입맛을 다시는 중이었다.

안돼. 점심에 고기 먹어야지.

말로 오만가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부드럽고 단호한 톤으로 선을 그었다. 평소엔 아침은 없고 점심은 선택이었던 삶을 불편하지 않게 살아왔는 데 밖으로 나오니 끝없이 먹거리를 갈망했다. 봉화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당이 떨어져 후들거리는 팔을 들어 차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했다. 이래서 여행은 무서운 것이다.

무슨 냄새가 나지 않아요?

습하고 더워진 날씨롤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틀고 온 참이었다. 킁킁. 다들 콧등을 들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굽굽한 비냄새, 지친 사람의 냄새, 그리고 이제는 희미해진 비누향 저편에 어렴풋이 나무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잘 마른 향. 잘 자란 나무를 말려 정성껏 구워낸 숯불을 피운 냄새였다.


숯불구이(좌)와 양념숯불구이(우). 솔잎과 함게 구워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이 좋았다. 정갈하고 깔끔한 찬은 고기집의 기본기다.


나를 데리고 간 부부가 마르고 달도록 칭찬하던 숯불돼지갈비를 주문했다. 오리지널과 양념 두 가지 맛이다. 찬이 깔리고 주섬주섬 집어먹는 도중에 잘 구워진 고기가 나왔다. 공깃밥을 먹을 거냐고 묻기에 고기 먹을 땐 밥을 먹지 않는다는 고기인의 의지를 표명했다. 솔잎에 올려진 고기에서 좋은 향이 났다. 숯과 솔이 돼지고기가 가진 특유의 기름향을 우아하게 꾸며주었다.

고기 한 점을 먹어봤다. 숯불에 구워진 바삭한 식감이 나고 지방의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이어졌다. 이것은 파리에서 먹었던 바게트다. 따뜻하고 바삭했으며, 이내 곧 보드랍고 쫀득거리던 그 빵. 매일 밤 갓 구워낸 바게트를 비행기에 싣고 뉴욕의 아침으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빵을 파리에서 맛보고나선 서울에도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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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채에 싸 먹기 시작했다. 사실 고기를 먹는 데 찬은 중요하지 않지만, 쌈은 정말 중요하다. 스테이크처럼 고기만 먹는 데 익숙한 다른 나라와 달리, 쌈은 고기를 더 풍요로운 맛으로 먹을 수 있는 한국인의 비법이다. 동그랗게 한 쌈을 싸서 입에 넣을 때마다 쌉쌀하고 달콤한 땅의 맛이 난다. 바다의 추억을 품은 새우젓의 짭조름한 감칠맛과 고추가 품은 매콤한 태양을 맛이 이어지고 나서, 잘 구워진 고기와 만나는 순간. 쌈 하나로 우리 땅을 통째로 맛보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 3인분 더 주세요. 


돼지갈비의 본향 마포에서 왔다는 돼부심도 버린 채 먹는 데 집중했다. 맑은 공기와 멋진 산, 맛있는 접시가 앞에 있는 데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라. 여름 청계산을 넘어간다면 봉화에 들러 반드시 드셔보시라.  태어나길 잘했네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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