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멘 헤세 [싯다르타]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by 미에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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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야, 무엇을 기다리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아시잖아요.”

“계속 그렇게 서서 기다릴 작정이냐? 날이 밝고, 한낮이 되고, 저녁이 되도록?”

“서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다가 지칠 거야, 싯다르타야.”

“지치겠죠.”

“잠들겠지, 싯다르타야.”

“잠들지 않을 겁니다.”

“죽을 거야, 싯다르타야.”

“죽겠죠.”

“아버지 말을 듣느니 차라리 죽고 싶으냐?”

“저는 늘 아버지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계획을 포기하겠느냐?”

“저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할 겁니다.” -‘브라만의 아들’ 中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한 인간이 고행과 방황 끝에 열반에 이르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에 관한 장면들이 계속 마음에 남았고, 쉽게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떠난 뒤 그를 찾아 나섰던 싯다르타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 안에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 순간 나는 과거, 나와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엄마는 고향에 있는 대학에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수도권 대학을 선택했고, 자취를 시작했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엄마는 고향의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내어줄 테니 주말부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 살게 되었다. 언제나 엄마는 나를 붙잡았고, 나는 떠나고 싶어 했다. 내가 선택했기에 힘들고 괴로움이 있어도 스스로 견뎌내면서 독립적인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지금 나는 행복하고 즐겁다. 어느덧 내가 고행과 깨달음을 조금씩 통과하며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깨닫게 된 것은, 삶이란 결국 누군가 대신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삶은 홀로 경험하고, 실패하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때로는 타인의 삶과 선택을 따라가 보지만, 그 끝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허무와 상실감이다. 만약 내가 엄마의 선택을 따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내 삶의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말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 그 자신의 얼굴이 투영되어 있었다. 투영된 그의 얼굴에

뭔가가 있었다. 잊어버린 뭔가를 떠올리게 해주는 무언가가. 곰곰 생각해 보니 알게 되었다. 그가 사랑하고 또 두려워하기도 했던 어떤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가 지금 자신의 아들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을 그의 아버지도 과거에 아들 때문에 똑같이 겪지 않았던가?....

강물이 웃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이 그렇다. 모든 것은 다시 되돌아온다. -‘옴’ 中


지금 나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엄마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내 모습에서 엄마가 보이고, 목소리에서 엄마가 느껴진다. 내 옆에 나의 딸은 엄마만이 전부인 어린아이에서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엄마를 떠났듯, 내 아이도 나를 떠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과연 의연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의 삶을 독립된 삶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싯다르타”는 내게 깨달음을 주기보다,

이 질문을 오래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