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돈키호테 "아큐
"상대가 말을 더듬으면 욕지거리를 해대고, 힘을 못 쓰는 것 같으면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당하는 쪽은 늘 아큐였다."
" ‘망각’이라는, 조상이 물려준 보배가 효력을 발휘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다다르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중국 문학은 생소하고 어려운 한자가 많이 나와 읽기에 참 난감했다. 중국 역사와 발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훨씬 더 몰입이 잘 되었을 것 같다.
나는 『아큐정전』을 읽으며 주인공 아큐의 모습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두 작품은 시대와 배경이 전혀 다르지만, 두 주인공 모두 현실의 실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아큐는 '정신 승리'로, 돈키호테는 '기사도적 상상'으로 현실을 견뎌낸다. 기사도 시대가 저물었음에도 스스로 기사라 믿는 돈키호테의 무모함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토록 오래 거리를 끌려다녔으면서도 노래 한 소절 못하더니. 괜히 따라다니느라 헛고생만 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통해 인간의 이상과 꿈을 풍자하며 따뜻한 웃음을 준다면, 루쉰는 아큐를 통해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비극적인 결말로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
우리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모임에서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을 주제로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인 우리의 위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재래식 화장실의 일화나 전쟁기념관이 필수 견학 코스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아이들은 상상조차 못 할 추억이다. AI와 대화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 시대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 봤다.
어느 날 신랑이 “쳇지피티를 한번 사용해 볼까?”라고 말을 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이 웬일인가 싶다. 때로는 “떡볶이 한 접시에 2천 원 아냐”하는 소리를 하길래 동네 떡볶이는 5천 원에 판다고 하니, 신랑이 안 먹고 만다며 고래고래 거리는 것을 보면 ‘현실판 돈키호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자신만의 희한한 고집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 ‘아큐’가 아닌가 싶다. 어이없는 논리로 문제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말이 지금 시대를 풍자하는 유머 같아 나는 배를 움켜쥐고 박장대소하기도 한다. 그 옆의 딸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큐의 정신 승리든, 돈키호테의 망상이든, 결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통과하는 모습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 앞에서 요지부동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