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치열하게 지키고 싶은 것

by 미에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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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고기를 죽여서 정말 안 됐지 뭐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파멸'은 물질적, 육체적 가치와 관련되지만, '패배'는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외부의 힘에 의해 파멸할망정 정신적으로는 좀처럼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산티아고야말로

영웅이다. 산티아고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파멸당했을지 몰라도 청새치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점에서 보면 조금도 패배한 것이 아니다.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비록 패배했을망정 자신이 세운 목표, 즉

큰 고기를 낚았다는 점에서 그는 정신적으로는 전혀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올린 뒤, 그것을 빼앗으려는 상어들과 끝까지 싸운다.

지친 몸으로, 이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노인은 왜 그토록 지키려 했을까?

그 싸움은 단순히 고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무림이다.

노인은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그에게는 운이 다했다는 주변의 말과 함께 더 이상

어부가 아니라는 가치상실이 따라붙었다. 그런 그에게 청새치는 자신이 여전히 어부임을 증명해 주는 존재였다.

읽으면서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노인처럼 치열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가.

요즘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가치 있는 삶'이다. 다른 누구의 평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한때 나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절약하며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삶을 그들은 응원하기보다 질타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삶의 가치가 조금씩 갉아 먹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왜 노인처럼 끝까지 싸우지 못했을까. 당당하게 괜찮다고 말을 하지 못한 내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집안에서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는 전업주부로서, 나는 스스로 느끼는 가치 상실과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그들과 맞설 힘이 없었다.

반면 노인은 청새치의 살이 거의 남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노를 들고 상어와 싸운다. 그 모습은 결과보다도 끝까지 지키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과가 남지 않더라도, 나 역시 나의 존엄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싶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가치 있는 삶이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삶에서 반드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얼마나 치열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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