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도 빛나고 가을에도 빛나는" - 김기화

엄마의 껌 씹는 소리

by 미에르조




‘엄마의 껌 씹는 소리’

4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수필을 읽고 작가의 소소한 일상에 스며드는 날이었다.

섬세한 문체는 마치 곁에서 함께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마음의 변화까지 포착하는 묘사력은 정말 부러울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껌 좀 씹어볼 시간’이라는 글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작가는 껌을 통해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따뜻한 시간을 그려냈다.



“친구 몇 명과 껌딱지처럼 늘 붙어 다니던 때, 함께 껌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했던 게 엊그제 일 같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런 추억이 있어 가까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 다.” op. 211


껌은 작가의 따뜻한 추억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릴 적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껌 찾기가 떠올랐다.

엄마의 장군 같은 추진력은 늘 주위를 힘들게 했지만, 우리 가족의 경제력을 일으킨 공신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15평 통로식 아파트에 살았다. 밤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낡고 좁은 곳이었다. 아파트 상가에서 음식 장사를 하던 엄마와 택시를 몰던 아빠는 늘 바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은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바빴고, 집순이였던 나만이 오롯이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엄마의 늦은 밤 퇴근하는 소리는 복도를 통해서 들리는 껌 씹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그 소리는 신기한 동경이었지만, 중학생인 된 나에게는 점점 거슬리는 소음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뭐라 해도 그 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다음날 집 정리를 하다 보면 머가 그리도 소중한지. 찬장 밑, 컵 위, 접시 밑부분, 식탁 아래…. 도무지 언제 씹었는지 모 를 껌 뭉치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치우면 귀신같이 알고 꾸중을 들었다.

“그거 아직 다 안 씹었어!! 아까운데 왜 버려!”

그 당시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말과 행동이었다. 내가 치울수록 엄마의 씹던 껌은 상상하지 못할 장소에서 발견이 되었다.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숨기는 자와 찾는 자의 연속이었다. 세월이 흘러 온종일 고단하고 바쁜 일과 속에 지치고 힘들 때면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견뎌냈을까. 문득, 엄마가 씹던 껌이 생각이 난다.

“딱! 딱! 딱!”

일정한 박자와 경쾌하기까지 했던 그 소리는 본인의 피로를 삼키며 고단한 하루를 버텨냈던 삶의 박자기가 아니었을까. 전원생활을 하시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신 지금의 엄마는 더 이상 껌을 씹지 않는다.


작가의 「껌 좀 씹어볼 시간」이 추억을 되새기며 따뜻한 웃음을 남겼다면, 나는 그 껌을 통해 엄마의 삶과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껌 좀 씹어볼 시간’ 이제 그 말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무게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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