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싱가포르 한달살이 -
우리 딸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지난 여름, 엄마가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와서 '싱가포르 한달살이'를 하고 가셨다.
코로나로 3년 만에 한국을 갈 예정이었던 지난봄, 어느 날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전화를 했다.
"딸, 한국에 왔다 싱가포르로 돌아갈 때 엄마도 우리 딸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같이 가면 안 될까? 우리 딸하고 사위가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살나 궁금하다."
욕심 없는 엄마가 평소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고는 취미생활과 자식 관련된 것뿐인데, 먼저 나한테 싱가포르에 오고 싶다고 말을 꺼내신 것이다.
외국인 사위와의 언어 장벽으로, 아들같이 사위라는 엄마의 꿈은 이미 진즉에 물 건너갔다. 예비 사위와 몇 번 만나지도 못해 친해지기도 전에, 예비 사위가 급작스럽게 해외 발령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딸과 사위를 싱가포르로 떠나보내셨다. 이렇다 보니, 그동안 내심 아쉬움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딸 결혼식마저 무산이 되었고, 혼인신고만 하고 산지가 3년이 지났는데, 아무래도 식장에 선 딸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인지 엄마는 종종 "딸이 싱가포르에 혼자 나와 일을 하는 건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솔직한 속마음을 드러내셨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장모님이 싱가포르에 와 함께 머물러도 괜찮겠냐 하니, 고맙게도 흔쾌히 "No problem!"이라고 대답해줬다. 참 좋은 남편이다.
약 보름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엄마에게 알리니, 이번에는 "딸, 이번에 가면 엄마가 언제 또 싱가포르에 가보겠니. 이왕 간 김에 엄마는 한 달 정도 너네하고 같이 머물고 싶은데, 안 될까?"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한 달이라. 결혼 후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만 머물러도 불편한데, 우리 집에서 엄마랑 한 달 동안 둘이서도 아니라 남편하고 셋이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순간 이런 걱정이 들었지만,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욕심 없는 엄마가 진짜 간만에 부리는 욕심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약 10초간 당혹함을 보였디만, 이내 참 고맙게도 흔쾌히 "As long as she wants."라고 대답해줬다. "어차피 난 출근하는 사람이고, 집에서 일하면서 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건 당신인데, 당신이 가장 힘이 들 거야. 당신만 괜찮다면 난 좋아". 참 좋은 남편이다. 역지사지로 만약 시부모님께서 한 달 동안 와계신다면 과연 나도 남편처럼 흔쾌히 좋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부리는 엄마의 욕심과 남편의 배려가 더해 그렇게 엄마의 싱가포르 한 달 살이가 확정이 되었다.
엄마의 싱가포르 한달살이를 앞두고 나의 마음은 평온했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엄마랑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 "남편은 장모님이랑 같이 지낼 수 있겠대?", "너 일하는 동안에 어머님은 뭐하실 건데?" 등등 온갖 질문들이 쏟아졌다. 부러움보다는 걱정과 근심의 눈빛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엄마와 내가 둘이서 한 달 넘게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린 생각보다 궁합이 잘 맞는 여행 메이트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쉬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엄마의 비행기표를 끊었다. 25박 26일 일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