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싱가포르 한달살이
Long time no see. How are you?
인천공항에 가려고 엄마와 난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3년 만에 비행기를 타는 엄마의 얼굴과 부산스러운 몸짓에서 설렘과 어색함이 잔뜩 묻어났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캐리어 안 물건들을 이렇게 넣어보고 저렇게 넣어보면서 결국 큰 이모표 김치를 뺏다. 출국 전날 저녁까지도 큰 이모표 김장 김치와 파김치를 캐리어에 넣어가네마네로 입씨름을 했는데, 공간 부족과 '거기에도 다 팔아!'라는 나의 강한 반대에 결국 국산 깐 마늘 한 봉지만 가져가는 것으로 극적으로 협의했다. 그 깐 마늘들, 아직까지도 다 못 먹고 냉동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오랜만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생각보다 더 한산했다. 뉴스에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팬데믹 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미비한 수준인 듯하다. 아시아나 체크인 데스트에서 여러 가지 필요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를 하는데, 과거에는 없었던 영문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도 추가됐다. 체크인 테스크에서 엄마의 백신 접종 증명서를 보더니 4차 접종까지 맞은 사람은 처음 봤다며 놀라워했다. 엄마는 마치 나라에서 준 훈장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를 자랑하듯 놀라워하는 직원에게 4차 접종까지 맞게 된 경위를 계속 이야기하셨는데, 이런 엄마를 보고 속으로 '제발 그만!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이제 좀 가자!'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사람들로 줄이 길었던 엑스레이 검색대에는 텅텅 비어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공항 모습이 임여사에게도 낯선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항에 갈 때면 항상 여유 있게 가서 탑승 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다행히 인천공항의 면세와 식당들 대부분 다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여행객만 줄었지, 상점들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탑승구 근처 3년 전에도 있었던 던킨도넛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들어갔다. 커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은 우리는 임여사의 3년 만의 여행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곧 이모, 삼촌, 엄마의 여러 지인분들께 동네방네 전송되었다. 엄마는 주변분들의 많은 응원과 함께 싱가포르 한 달 살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무언가를 내내 적더니 대뜸 그걸 읽으며 나한테 맞느냐고 물으셨다.
"Long time no see. How are you. I missed you, Du Seh-bang(두서방.)"
몇 년째 매주 주민센터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계시지만, 이제 실제로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를 쓸 상황이 다가오니, 알았던 단어도 헷갈리고 혹여나 틀렸을까 봐 걱정이 되셨나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외국인 사위에게 틀린 영어로 첫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6시간의 비행 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하자 이미 시간은 저녁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차피 택시 타고 집에 갈 거, 남편에게는 집에서 기다리라고 이미 말을 한 상태였다. 싱가포르 주민답게 빠르고 신속하게 택시정거장을 찾아 이동하고 집으로 향했다.
콘도(*싱가포르에서는 민간 아파트 단지를 콘도라고 부른다) 택시 정류장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만난 남편에 택시에서 캐리어를 꺼내는 것도 잊은 채 둘만의 뽀뽀와 포옹의 시간을 가졌다. 뒤에서 택시 아저씨가 조심히 내려준 캐리어를 받은 엄마는 우리의 포옹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 슬며시 사위에게 다가와 "Hello Du Seh-bang! Long time no see.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네 후 가볍게 포옹을 해 완벽한 외국식 포옹 인사까지 제대로 마무리했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비행기에서 혼자 인사말을 연습한 사람으로 볼까. 이렇게 어색함 1도 없는 완벽한 인사를 건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