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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Sep 03. 2022

#2. 엄마는 동네 주민이 되어보고 싶다

- 엄마의 싱가포르 한달살이 -

엄마는 동네 카페에서 너랑 커피만 마셔도 행복해

내가 사는 동네는 싱가포르 시내에서 가까우면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 중 하나인 티옹바루(Tiong Bahru)라는 곳이다. 문화유산으로 보호된 오래된 저층 건물들이 즐비한 지역이다 보니, 하늘로 솟은 멋들어진 고층 건물은 많지 않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이 동네만의 분위기가 있다. HDB(정부가 공급하는 공공 아파트)가 많아 현지인 비율이 꽤 높지만, 오래된 저층 건물을 멋들어지게 리모델링한 힙한 집들도 많고, 숨은 길목 곳곳에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지역이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 동네를 소개할 때, local vibe(현지 분위기)와 western vibe(외국스러운 분위기)가 적절하게 잘 섞여 있는 멋진 동네라고 소개한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 엄마는 더운 땡볕 아래에서 매일 만보 이상씩 걸어 다니는 힘든 여행은 6년 전 유럽 여행 이후로 졸업했다며, 힘 들여서 여기저기 구경 다니지 않고 동네 주민처럼, 현지 사람들처럼 여유 있게 구경하다 지내다 가고 싶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엄마는 너네가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만 마셔도 너무 좋을 것 같아.”


마침 내가 사는 티옹바루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현지 느낌과 힙스러운 분위기와 공존하는 데다 유명한 카페들이 많아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지역이기 때문에 엄마의 희망사항을 맞출 수 있는 완벽한 동네다. 그래서 주중에는 재택 일을 하기 때문에 주중에는 동네에서 움직이고, 주말에는 좀 더 멀리 나가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다.


동네 건물과 재래시장


한 달 동안 싱가포르에서 머물면서, 아침에는 재래시장에 가서 신선한 과일을 사 오고, 저녁에는 동네 산책을 하는 나날들을 이어갔다. 점심에는 동네 맛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동네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외식을 하거나, 간단하게 집에서 요리를 해 먹었다. 사실 싱가포르에는 맛집도 많고, 먹거리도 많아서 집에서 요리를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티옹바루에는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유명한 카페, 브런치 가게, 베이커리 가게들이 많다.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서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지만, 그래도 싱가포르에서 먹는 브런치는 또 다르지 않는가. 싱가포르 최고의 크로와상 베이커림점 겸 카페인 Tiong Bahru Bakery, 컵케이크와 머핀이 유명한 Plain Valina, 싱가포르 Must-Visit, Best Cafe 리스트에 항상 오르는 Forty Hands, Flock Cafe, Merci Marcel, PS. Cafe, drips Bakery Cafe, Prive 등등 10분 거리 내에 이 수많은 카페들이 있다. 워낙 유명해서 주말이면 긴 대기줄이 형성되는데, 우리같은 동네 주민 특권은 주중 가장 한가로운 시간대에 편하게 방문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카페에 갔다. 커피와 브런치 메뉴를 주문해서 엄마랑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매일 이렇게 붙어서 대화를 했는데도 매일 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었을까 웃음이 나온다.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와 떠올려보려 해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소소한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매일 점심마다 2시간씩 이렇게 점심 겸 커피 타임 겸 수다타임을 가졌다.


Prive, Flock Cafe, Merci Marcel 에서


둘이서 한 끼에 SGD50에 하는 분위기 있는 브런치 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옆에 재래시장 2층에 있는 호커센터(Hawker Center, 야외 식당가)에서 한 끼에 SGD15에 식사를 하기도 했다. 호커센터는 야외 식당가 같은 곳인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티옹바루의 호커센터에는 유명한 맛집들도 많은 호커센터 중 하나로,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점심 시간대에 테이블 잡기도 치열하고, 직접 가게 앞에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아와야 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 카페에서의 식사처럼 느긋함을 누릴 수 없다. 야외 식당가이다 보니, 더위에 약한 우리 엄마는 결국 연신 부채를 부치며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맷힌채 식사를 하셨는데, 엄마가 원하신 '현지인'처럼은 아직 어려워 보이셨다.


Tiong Bahru Hawker Center에서 먹은 나시르막, 하이난니스 치킨, 그리고 최애 사탕수수 주스


싱가포르 한달살이 2주 만에 엄마는 안면을 튼 이웃사촌도 생겼다. 오랫동안 수영을 해왔던 엄마는 싱가포르에 와서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콘도 내 야외 수영장이었다. 한 번 가는 법을 알려드리니, 이후에는 내가 일을 할 때, 혼자서 수영을 하고 오시곤 했다. 일주일에 3,4번 해가 세지 않은 아침 시간대에 내려가 수영을 하고 왔는데,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수영을 하니 오며 가며 얼굴이 익는 수영 메이트가 생겼다. 어느 날은 수영을 하고 집에 온 엄마가 "오늘 어떤 중국 아저씨가 나한테 왜 배영은 안 하냐고 물어봐서, 배영을 보여주니까 엄지척을 했다"며 어깨가 으쓱해져서 나랑 조니에게 자랑을 하셨다.


아침 저녁으로 수영장에 가는 엄마


비록 혼자서 장을 보러 간다거나 외출을 하진 못하셨지만, 혼자 콘도 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이웃하고 소통을 하려는 엄마의 모습에, 딸로서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기특하면서도 감사했다. 싱가포르 한 달 살이로 싱가포르와 이곳의 생활에 완벽하게 알 수 없었지만, 엄마에게는 충분히 싱가포르의 매력에 스며들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이었다.


Tiong Bahru Baker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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