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n to the Light
일을 시작하면서 작은 습관이 생겼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달력을 펼쳐보며 공휴일들을 표시한다. 물론 공휴일이 표시되어서 나오는 달력도 많지만, 아무래도 하는 일도 그렇고 가족들도 여러 나라에 있다 보니 내 달력에는 항상 홍콩, 중국, 한국 등 여러 국가의 공휴일을 표시한다. 이런 말을 하면 구글 달력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듣지만, 아무래도 아날로그적인 ‘갬성’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매년 탁상 달력을 구해서 이렇게 각국 공휴일을 색색이 표시한다.
이때 9월이나 10월을 펼칠 때면, 자연스럽게 추석 공휴일이 언제인지 가장 먼저 찾게 된다. 매년 음력 8월 15일인 우리나라 추석은 중국에서는 중추절, 영어로는 Mid-autumn Festival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추석 당일을 기준으로 앞뒤로 총 3일을 쉬어 운이 좋으면 주말까지 포함돼 최대 5일까지 쉴 수 있다. 홍콩에서는 중추절 당일과 다음날 총 이틀만 쉬기 때문에 한국과 비교하면 뭔가 소중한 휴일을 잃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중추절 연휴를 앞두고 마음이 붕붕 뜬다.
올해 홍콩 중추절 연휴는 대체공휴일까지 포함해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총 3일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중추절 연휴에는 핑계로 그간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항상 여러 친한 가족들과 모여 각자 해온 음식들을 함께 나눠 먹었고,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애들끼리 손에 랜턴을 하나씩 들고 뛰놀았다. 일찍 자야 하는 새 나라 어린이들이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던 1년 중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석이 큰 명절이듯 홍콩에서도 중추절은 온 가족이 모이는 중요한 행사다. 중요한 행사에는 당연히 음식이 빠질 수가 없다. 우리나라 추석에 송편이 빠질 수 없다면 홍콩 중추절에는 월병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중추절이 다가오면 유명한 레스토랑, 호텔, 카페부터 프랜차이즈 제과점까지 다양한 월병 판촉 행사를 한다. 맛있지만 Pre-order로 겨우 구할 수 있다는 페닌슐라 호텔이나 상그릴라 호텔 월병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둥근 달을 본떠 만든 월병은 길상을 의미하고 단결을 상징한다. 팥이나 연꽃씨 페이스트로 만든 소 안에 소금에 절인 오리알 노른자를 채워 넣었다. 노른자는 보름달을 상징한다. 내 인생 첫 월병은 의외로 좀 늦었다. 중학생 때 처음 월병을 먹었는데, 퍽퍽하고 기름지고, 비릿한 오리알 노른자 맛을 본 이후 오랫동안 월병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후 월병 초심자용이라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월병을 시작으로 스타벅스 월병, 오레오 월병과 같은 퓨전 월병을 매년 하나씩 도장깨기 하듯 사먹고 있다. 나처럼 초딩 입맛이라 전통 월병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퓨전 월병을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중추절에 빠질 수 없는 행사는 역시 다양한 볼거리 축제다. Tai O Village에서는 매년 큰 랜턴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고, 빅토리아 파크에서도 랜턴 카니발을 한다. 14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Tai Hang Fire Dragon Dance도 중추절 볼거리다. 300명이 수만 개의 향이 꽂힌 67m에 달하는 용 조형물을 함께 들고 거리 곳곳을 누비는데 장관이다.
침사추이, 코즈웨이베이 등 대형 쇼핑몰이나 쇼핑거리에 수많은 랜턴과 토끼, 보름달 등으로 장식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축제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중추절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완차이 Lee Tung Avenue에만 가도 화려한 랜턴 장식에 연신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인근 공원이나 주택가에서도 다양한 모양의 랜턴을 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사리같은 아이들의 손에 들린 랜턴은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듯 가정에 좋은 기운과 번영을 불어넣어준다.
코로나로 지난 2년여간 많은 행사와 축제가 개최되지 못했는데, 올해는 시끌벅적한 중추절 명절 분위기를 즐길 수 있길 한번 고대해본다. 모든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한 명절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