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영 Oct 30. 2023

50. 내가 만난 100인

테러

"선생님, 차 원래 저렇게 더러웠나요?"


오후 5시, 먼저 퇴근한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보내준 사진을 보니 한껏 오물을 뒤집어쓴 나의 소피아 (자동차 이름)의 모습이었다. 급히 그곳으로 향했다. 새똥인가 싶어 먼저 물티슈를 꺼내 슬쩍 닦아보았다. 새똥이라고 하기엔 너무 냄새가 고약하고 양도 어마어마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주차한 곳은 3층빌라의 담벼락 옆이었다. 내 차 바로 앞에  또 다른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그 차 안에는 블랙박스가 제 할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표시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주인에게 전화를 하던 찰나 통유리로 된 이발소에서 나를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어떤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물었다.


"혹시  주인되세요?"

"네, 무슨 일이시죠?"

"저는 저 앞차 주인인데요. 보시다시피 차에 오물이 한 바가지 껴얹어져서요.."

"아! 저 차 제가 올 때부터 저렇더라고요. 안 그래도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동네 아주 오랫동안 터를 잡은 듯한 이발소의 사장님이 나오셨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동네 친구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도 함께 하셨다.


" 안 그래도 저 차 주인이 우리도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4시 넘어서인가 무슨 젓갈냄새 같은 게  진동을 하길래 나와 봤는데 저 차가 젓갈을 뒤집어쓰고 있더라고요."

"혹시 누가 그랬는지 보셨습니까?"

"아니요. 보지는 못했는데 분명한 건 몇 시간 전에 젓갈차가 지나가긴 했습니다."

"젓갈차요?"

"젓갈을 실은 트럭인데 아마 그 차가 저쪽에서 갑작스러운 내리막길이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듯합니다. 그러면서 뒤에 실린 젓갈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젓갈이 쏟아졌다고요?"

"저희가 직접 본 건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두 사람은 첫인상과는 달리 조금씩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하늘을 향해 한마디 했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이 동네가 그런 동네는 아닙니다."



나는 마지막 수업을 남겨 둔 터라 다시 학원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물을 뒤집어쓴 나의 소피아의 사진을 첨부하며 운동이 끝나는 대로 이곳으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2시간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분명 몇 달 전 고장 난 스마트 워치를 바꾸자고 했는데 통화 상태만 왔다 갔다 할 뿐, 운동할 때나 평소 사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우기던 모습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남편이 얼른 뛰어와 든든히 내 옆에 있었으면 했다.


퇴근 후, 고민 끝에 먼저 경찰에 신고를 했다. 평소 경찰관 친구가 알려준 대로 주소를 정확히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효성로 3길 20번지인데요."

"네. 위치 확인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 차에 젓갈인지 물인지 뭔가 잔뜩 뿌려져 있어서요."

"젓갈이요?"


신고를 접수한 경찰도 황당한 사고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역력히 느껴졌다. 신고 2분 만에 배정된 관내 경찰관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몇 분 전 갑작스레 터진 강력사건으로 관내가 어수선하여 도착하는데 5분이 더 지체될 것 같다고 했다. 그때  3층빌라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온 아주머니가 주변을 힐끗거렸다. 다급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혹시 여기 사세요?"

"아.. 네."

"혹시 저 차에 젓갈이 껴얹져 있는데  근래 이런 일이 있었나요?"

"아니요.. 몰라요.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빌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그녀를 의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얘길 들으면 마치 자신이 수사반장인 것처럼 더 관심을 보이기 마련인데, 그녀는 되려 그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 스쳐만 갈 뿐이었다.

내가 무슨 프로파일러도 아니고 그녀는 그저 이런 일에 엮이기 싫어서 한 행동일 뿐인데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최근에 넥플릭스 시리즈를 너무 끼고 살아온 탓에  현실인지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스스로를 탓하는 게 더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경찰이 도착했다. 사람들도 조금씩 몰려들었다. 또 우리 모두는 같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전깃줄과  3층 빌라.


"최초 발견시간이 언제예요?"

"5시쯤이요?"

"5시?"


하지만 지금 시간은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분명 낮에는 그나마 육안으로 확인가능했던 오물의 정체가 어둑해진 지금은 더욱더 정체불명의 액체로 변해져 있었다. 경찰관들은 손전등으로 여기, 저기를 비추어 보았다.


"이 근처 사세요?"

"아니요. 직장이 이 근처예요."

"어디서 근무하시는데요?"

"이 뒤편 학원입니다."

"아! 혹시 ㅇㅇㅇ학원이요."

경찰관은 한 번에 우리 학원이름을 말했다.


"아, 네. 그런데... 어떻게..."

"안녕하세요? 제가  중3의 ㅇㅇㅇ학생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 말을 터뜨리는 순간 사건은 공손하게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경찰관에서 학부형이 되어버린 그와 나는 사건 반, 상담 반을 섞어가며  분위기는 훈훈하게 사건은 애매하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집에 가셔서 꼭 블랙박스 돌려보시고 혹시 뭐가 나오면 저희 쪽으로 다시 연락 주시면 됩니다. "

"아~ 네. 아버님."

"그리고 블랙박스 칩은 지금 빼놓으세요. 안 그러면 앞에 녹화된 게 다 지워질 수 있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드디어 멀리서 남편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걸어오는 그를 보며  최근 드라마에 빠져 살아온 스스로를 한번 더 자책했다. 나는 남편이 드라마 속 멋진 남자들처럼 나타나 재력과 지식을 마구 뽐내며 이 젓갈사건을 명쾌히 해결해 주길 원했다. 그리고 다정한 말투와 태도로 내 안위를 걱정해 주길 바랐다.

'괜찮아?'


하지만 현실 속 남편은 운동복 차림에 크록스 슬리퍼를 끌고 나타나 이렇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너는 사회생활을 얼마나 괴팍하게 했으면 이런 테러를 당하냐?"


그리고는 차를 이곳, 저곳 살피더니 지금껏 모든 이들이 그랬듯 전깃줄과 3층빌라를 올려다보았다.


"위에서 던졌나? 자기 집 앞에 주차했다고?"

"그럼 주차금지표지판을 세워 놓으면 되지 뭐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그리고  오늘 처음 주차했다고."

"젓갈인데?"

"아닐 수도 있대. 경찰이"

"됐고, 일단 세차부터 하자. 내가 운전할게."


세차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이 늦게 온 것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멋지게 해결하지 못한 것에 아니면 툭툭 거리는 말투 때문인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경찰이 젓갈이 아니면 뭐래?"

"새똥일 수도 있대. 집에 가서 블랙박스 돌려보래."

"블랙박스에 이게 나오나? 각도가 옆쪽인데? 앞, 뒤만 녹화되잖아."

"그니까 일찍 왔어야지. 내가 진작에 스마트 워치 바꾸자고 했잖아! 그렇게 우기더니... 필요할 때 연락도 안 되고..."


나는 사건과 무관한 남편의 고장 난 워치에 분풀이를 했다. 그런데 그때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음주단속을 하는 것이다. 내 차는 이미 운전석 쪽에 오물을 뒤집어쓴 상태라 창문도 내리지 못했다.


"오! 이거 어쩌지?"

"차를 조금 앞에서 세우고 내려야겠네."


남편은 단속지점에서 1-2미터쯤 앞에서 차를 미리 세우고 내렸다. 순간 모든 게 일시정지 되는 듯 경찰관에게서 나오는 긴장감이 젓갈냄새보다 더 강력했다.

"차를 앞으로 좀 더 당기셔야..."

"보시다시피 제 차가..."

"아! 잠시만요"


경찰이 빠르게 태세전환을 한 후 음주측정을 했지만 시선은 테러를 입은 소피아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냄새가 엄청 심한 대요?"

"아. 네 저희도 뭔지 잘 몰라서.."


모든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남편도 머쓱한 표정으로 얼른 차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우리 소피아를 본 사람들은 마치 시험장에서 앞장의 문제를 푼 뒤, 뒷장을 넘겼는데 또다시 자신이 모르는 문제 앞에 봉착한 듯했다.


"하필 이런 날 음주단속이 뜰 줄이야."


정지신호에 무심코 소피아 옆에 정차했다 놀라 곧바로 핸들을 꺾는 배달오토바이를 여러 대 마주한 뒤 세차장에 도착했다. 

우리 소피아를 첫눈에 알아본 세차장 사장님은 올림픽 양궁선수가 쏜 화살처럼 엄청난 그루브를 거쳐온 온갖 추측들을 뒤로한 채 한방에 과녁을 명중시켰다.


"어이구~ 왜 하필이면 공중 화장실에 주차를 하셨대. 똥을 한 무더기를 싸 놨네."

"이거 진짜 새 똥 맞나요? 젓갈 아닌가요? 냄새가 완전히 멸치 젓갈인데요?"

"새 똥에도 젓갈냄새가 납니다. "

"아니 이 만큼이나 많이 싼다고요? 그 조그마한 애들이?"

"한 무더기 날아와서 단 몇 초만에 한 무더기 싸놓고 가는 게 걔네들이 습성입니다. 지난주에는 이것보다 더 심한 차도 봤습니다. 차에 무슨 페인트를 칠해놨나 했더니 바로 새똥이더라고요."


사건 종료.


젓갈테러로 로맨틱스릴러를 꿈꿨던 자.

새똥테러로 코미디시트콤을 살아가는 자.









매거진의 이전글 40. 내가 만난 100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