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내가 만난 100인
탕후루집 사장님이 부럽다.
"왜 신선한 과일에 굳이 해로운 탕시럽을 얹어 먹어?"
"과일 서너 개 꽂아서 파는데 너무 비싼 거 아냐?"
"끈적끈적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는 어떡할 거야?"
"혹시 나무 꼬치 재활용하는 거 아냐?"
누가 뭐래도 지금 나는 우리 동네 탕후루집 사장님이 제일 부럽다.
초등학생들 일주일 용돈 3000원을 다 털어 한방에 쓰는 곳.
오늘도 가고 내일 또 가는 곳.
무엇보다도 모든 손님에게 무심하게 단 세 마디만 던져도 되는 곳.
사실 이게 제일 부럽다.
"무슨 맛?"
(블랙사파이어 하나랑 샤인머스캣 하나요.)
"칠천오백 원."
"(카드) 꽂아."
"무슨 맛?"
"삼천 원"
"꽂아."
발 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어린 손님들에게 애써 웃어가며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불필요한 인사 따위가 필요 없는 그곳이 좋아 보인다.
그저 저 세 마디의 일자리가 부럽기만 하다.
얼마 전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K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좀 더 강도 높은 수업진행을 해달라고 하네요. 숙제도 H만큼 많이 내어달라고 합니다."
"(원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K는 부여된 숙제도 번역기나 구글검색으로 해오는대요?) 더 이상의 숙제는 무리입니다."
"K 어머님이 알아서 시킬 테니 H처럼 숙제를 많이 내어달라고 합니다. 두 분이 친하셔서 자신의 아이가 H한테 뒤쳐지는 게 싫은가 봅니다."
" 여기서 더 나가면 K의 스트레스가 분명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건 그 집에서의 일이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죠."
"엄연히 제 수업입니다."
"선생님?"
말 그대로 주문식교육이 되어가고 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교육사업을 하는 원장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공부를 하는 아이도
모두가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라는 그럴싸한 핑계만 존재할 뿐이다.
교육적 이념, 직업적 가치를 운운하는 감정소모전은 사치에 불과하다. 그래서 때론 아주 단순한 곳에 눈길이 간다.
그래서 우리 동네 탕후루집 사장님이 부럽다.
세 마디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자.
세 마디로 거지가 될 수 있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