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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Dec 07. 2023

25. 내가 만난 100인

그렇게 드라마틱한 써전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살면서 입원할 정도로 아파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의 고통은 있었다.

그건 바로 카페 출입문에 손가락이 끼였을 때였다.


우유아저씨가 배달을 마치고 우유수량 기재를 깜빡하고 가버렸다. 황급히 그를 따라가 카페 출입문에 손을 걸친 채 외쳤다.

"아저씨, 오늘 우유 기재 해 주셔야죠."

그 찰나 급히 화장실을 잠깐 빌려 쓴 손님이 수줍은 듯 몸을 굽신굽신 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잘 썼습니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열린 출입문을 힘껏 닫아주고 가버렸다. 그때 내 가운데 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출입문 단면과 충격적으로 맞닿았다. 틈에 끼어버린 것이다. 마치 손가락이 잘려 날아간 것만 같았다. 기절하기 일보직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나 홀로 통증에  갇혀버렸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밀레니엄시대는 밝았지만 이걸로 응급실을 갈 정도로 신세대적이진 못했다. 그저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몇 시간의 얼음찜질을 해 봤지만 다친 부위의 고통은 점점 더해갔다. 하물며 다친 손가락을 넘어 손바닥전체가 욱신욱신 거려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아침, 손가락이 부산어묵 크기 만큼 부어있었다. 아예 손 전체가 어딘가에 살짝만 닿아도 죽을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늘하루를 무조건 버티는 것뿐이었다.


월요일 아침, 병원의 첫손님으로 입장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여기 손가락이 문에 끼었어요.'

"아이고~ 아파서 죽을 뻔했겠네요. 언제 그랬어요?"

"토요일 밤이요."

"아~ 그래서 이렇게 많이 부었구나."


이미 병원에 온 것만으로도 절반은 나은 것 같았지만  지난날의 나의 고통을 한 번에 알아주는 의사의 한마디에 벌써 치료가 다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 탓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지금부터 이 의사는 환자인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우리 병원에서 이 손가락을 치료할 마땅한 도구는 없습니다. 지금 보시면 손톱밑에 새까맣게 피멍이 든 거 보이시죠?"

"..."

"이걸 뽑아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손톱밑이라... "


이틀 동안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나를 한번씩 툭툭 건드는 느낌이랄까 한마디 한마디에서 희망이 뿌리째 뽑혀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조금 원시적이 방법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하실래요? 다른 병원을 가실래요? 아니면 여기서 그 방법으로 해드릴까요?"


 여기서 또 이 고통의 연장선을 계속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무슨 방법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곳에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그냥 여기서 해주세요. 선생님!"


의사는 간호사 2명을 대동한 채 나를 치료실이 아닌 병원의 주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식탁 위를 소독하고 면포를 깔더니 내 손가락을 살포시 얹었다.  간호사 한 명에게는 내 어깨를 또 다른 한 명에게는 나의 손가락을 꼭 잡으로 지시했다.  그리고는 가스불을 켜더니 주사기를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손톱을 뚫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네요. 주사보다는 조금 따끔합니다."


한껏 달구어진 주사기 끝이 딱딱한 손톱을 찌지직 파고 들어갔고 마침내 구멍이 뚫리면서 검은 피가 그 사이로  쏟고 쳐 나왔다. 그는 주변의 면포로 손가락을 감싸 쥐더니 마치 떡 주무르듯 꾹꾹 눌러댔다.

처음 문에 끼었을 때 보다 아니 밤새 겪었던 통증보다 그때가 최고치였다.


"손톱 아래의 죽은 피들을 다 빼내야 해요. 다행히 손톱의 신경은 죽지는 않아서 자라 나올 때마다 깎으시면 됩니다. "


그렇게 바라던 대로 한방에 치유가 되면서 때론 어떤 일에 있어 과정보다 결과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어떤 과정보다는 결과주의자.

어떤 결과에 맞는 경험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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