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두바이 업타운 멀티프에서 살 때 우리 집은 새로 지어진 빌라였다. 1층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면 총 여덟 가구의 집들이 공용으로 쓰는 수영장과 짐이 있었다.
각각의 하우스 메이드들은 베란다로 나와 빨래를 널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 메이드는 연변에서 온 오십 대 아주머니였으며 모든 한국요리를 잘했다. 그중 라면을 아주 잘 끓였다. 그녀의 비법은 아주 단순했다. 레시피대로 그대로 끓이는 것이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500CC 맥주컵에 물을 부어 봉지에 쓰인 대로 정확한 타이머를 맞추어 수프와 면을 넣고 끓였다. 덕분에 우리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라면 맛집으로 통했다.
"너희 집 아줌마 계셔?"
"그럼 나 라면 하나만 끓여달라 해도 될까?"
친구들은 나를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 라면을 먹으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5년 전 두바이에서 하우스 메이드를 월 30-40만 원 정도에서 고용할 수 있었다. 주로 중국인들과 필리핀인들이 한국인들의 하우스메이드로 거주했으며, 그들의 세계에서는 비싼 집문제도 해결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수영장 때문에 연세로 계약한 이 집이 너무 크고 적적해서 하우스 메이드를 고용했다.
하루는 한국과 UAE의 축구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퇴근 후 얼른 옷을 갈아입고 주방을 지나치며 말했다.
"아줌마! 오늘밤 축구를 보러 가서 저녁 안 먹어도 돼요."
"..."
분명 듣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신발을 신으며 슬쩍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절반 쯤 껍질을 벗기기다 만 파를 그대로 손에 들고 나왔다.
"밤에 축구를 해요?"
"네!"
"그런데... 그 밤에 어두운데 어떻게 공을 차요?"
"축구장이 아주 밝아요. 아줌마!"
나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말만 하고 나왔지만 축구를 보는 내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날밤 축구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녀의 의문이 거의 해소되기 했지만 축구장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까지는 다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환경의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 옆집 메이드였다.
그녀는 짧은 커트 머리에 몸집도 컸고 힘이 아주 셌다. 빨래도 탈탈탈 떨어 없던 주름도 쫙쫙 펴질 정도로 반듯하게 널었고, 마당을 쓸 때도 쓱쓱쓱쓱 소리도 아주 시원시원했으며 그녀가 쓸고 간 타일은 반들반들 빛이 났다. 다만 그런 그녀는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골초인 듯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지만 꽤 친해 보였다. 서로 각자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와 한국어 바디랭귀지의 3박자를 골고루 맞춘 대화는 막힘이없었다.
"아줌마, 나 필리핀 마이 하우스 부자야."
"그래? 그런데 너는 와이 여기 왔니?"
"아줌마, 필리핀 마이 하우스 메이드도 있었어. 그런데 내가 여기서 메이드를 하고 있어. 오 마이 갓!"
그녀는 씁쓸한 듯 담배를 빨라댔고, 아줌마는 그녀의 웃픈 사연에 웃음을 내뿜었다.
나는 그저 시선만 수영장을 향하고 있었을 뿐 모든 신경은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있었다.
그녀의 담배연기가 멈추질 않자 아줌마가 말했다.
"니는 야. 그 담배 좀 그만 피우라!"
"아줌마! 나는 배가 고플 때도 스모킹 하면 OK~ 또 아플 때도 스모킹 하면 OK~ 외로울 때도 스모킹 하면 에브리띵 OK~ "
그녀에 대답에 나도 웃고 아줌마도 같이 웃었다.
"그래~그래~ 많이 피워라!"
그들은 그렇게 항상 깔깔거리며 일했다.
어느 날 밤 베란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커튼을 걷어보니 옆집 메이드가 와 있다.
(타원형으로 모든 집들이 붙어있으며 베란다를 통해서 오갈 수 있는 구조이다.)
"Ma'am! 안에 아줌마 있어요?"
누워있다 금방 일어난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줌마가 방에서 나왔다.
"네가 우짠 일이고?"
"아줌마! 아줌마 콜라 가져왔어!"
"아이고야~ 니 이런 게 가져오면 너네 마담이 싫어한다. 당장 갖다 놔라!"
"아줌마! I BUY!! I BUY!"
"얼른 가져가라니까 그러네."
"아줌마! IT'S MINE! I BUY~~!!"
두 사람의 실랑이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줌마! 쟤가 산 거래요. 아줌마 줄려고요."
나와 그녀들을 그렇게 마주하며 지냈지만, 그녀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낯선 땅에서의 삶을 밟아갔다.
나는 오직 내 미래를 위해서였고 그녀들은 자신의 가족들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서로의 삶을 마주하는 자.
서로의 삶을 기대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