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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Feb 23. 2024

67 내가 만난 100인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돈 벌러 온 사람


"이거 A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잘못 가르쳐줬네. 여기서 나오는 THAT은 그게 아니야."

"선생님! 우리 반애들 리딩교재 설명을 잘못하셨더라고요. 이 구문은 그렇게 끌고 가시면 안 돼요."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설명을 하셨는대요? 그리고 잘못한게 있다면 제가 다음시간에 직접 아이들에게 정정하겠습니다."


분명 B강사는 선을 넘고 있었고,  A강사는 선을 그었다.


한순간 두 사람의 날 선 대화가 회의실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B강사의 습관성 도발임을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단둘이서 해도 될 문제를 굳이 회의실까지 끌고 들어와 다른 강사들 앞에서 팀장인 A강사를 망신 주면서까지 도대체 본인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저자만 알 수 있는 애매한 문장을 접하기도 하고, 그걸 풀어내는  설명이 다를 수는 있어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설령 동료강사가 놓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행동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팀장인 A강사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금융에 대해서는 오로지 월급밖에 몰랐고,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각종 보험들은 가족들이 알아서 가입해 주며, 신용카드값은 언니가 대신 내주고 있었다. 마흔이 넘는 나이임에도 친구보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 그녀가 대형학원에 팀장이 된 이유는 단 하나, 장기근속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으며 아이들에게도 따뜻했다. 가끔 받은 팀장 수당으로 동료강사들에게 커피를 쏘기도 하고 수업에 지친 강사들의 책상에 달콤한 간식을 두는 세심도 있었다. 원장과 부원장 그리고 강사들 사이에서도 웃으며 유동적인 역할을 해나갔으며, 누구보다도 강사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강사들과 사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도 항상 학원 안에서 뿐이었다. 그녀는 근무하는 10년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

B강사와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출근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단연 오늘은 두 사람사이에서 칼바람이 불거라고 예상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의 구두 굽과  텅빈 학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어느 때보다 그녀는 강사실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B강사는 먼저 출근 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라떼 한 잔 드실래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아직 커피 안 마셨네요. 제가 사 다드릴게요."


팀장은 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1층 커피숍을 향했다.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녀를 따라나섰다.


"어제 두 분이서 잘 푸셨나 봐요?"

"뭘요?"

"어제 회의실에서..."

"아니요. 전혀요."

"그럼 어쩌면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하실 수 있으세요? 더군다나 커피까지 사다주시고..."


그녀는 혼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잠시 짓더니 아무런 대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여기에 그냥 돈 벌러 왔어요. 여기서 인간관계를 쌓으려고 온 게 아니라고요. "


나도 모르게 다른 세계의 그녀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생활은 그녀와 완전 정반대였기때문이다.

'매일 같이 일을 하다보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저 기계처럼 일만 하기에는 삶이 너무 상막하지 않나?'



"선생님! 저는 매일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요. 그날 하루에 집에 가는 힘만 딱 남겨놓아요.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여기 일은 다 잊어버려요. 집으로 가서 엄마가 해 주는 저녁 먹고 그리고 언니랑 우리 강아지들 산책시키러 나가요. 그렇게 이것, 저것 하다 보면 그냥 또 잊어져요. 그리고 다음날 내가 입고 싶은 옷 입고 출근하면 돼요."


집이 좀 살아서 그런가?

삶이 너무 수동적인거 아닌가?

일의 가치를 너무 의미없게 만드는거 아닌가?


이렇게 보편적인 우리와 조금 다른 그녀의 삶 앞에 나는 더 이상의 위악을 떨지 않기로 했다.

다름에는 분명 다른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세운 기준은 내 세계에만 존재할 뿐이다.

확실한 건 그녀의 삶은 단순하지만 아주 건강했다. 지난 5년동안 그녀가 어디아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저는 그냥 여기 돈 벌러 온 거예요."


이 하나로 그녀는 숱한 감정소모전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일차적인 자.

부차적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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