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김병현선수의 경기를 관람했다. 이 놈의 애국심은 항상 나라밖을 나서야 발동된다.
국경일에도 태극기 한 번 달아본 적 없던 내가 난생처럼 메이저 리그 경기장 담장에 태극기를 걸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걸로도 모자라 나는 흰 티셔츠 등판에 KOREA라고 새겨진옷을 입었다. 여행을 오기 전 진주에 사는 현주언니가 메이저리그 여행일정을 듣고서 직접 만들어 준 옷이다. 나는 이 옷을 무척 마음에 들다 못해 아주 사랑하게 되었다. 이 티셔츠로 인해 가는 곳마다 나를 중국이나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환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경기장에서도 그랬다. 김병현선수는 경기 막판에 등판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우리보다 기분이 더 좋아진 팬들이 우리에게 사진도 같이 찍자고도 하고, 핫도그도 사 주었고 경기 내내 초콜릿과 같은 간식거리도 주었다. 우리는 혹시 경기가 질 걸 대비해 태극기도 느슨하고 묶었고, 티셔츠를 덮을 재킷도 미리 꺼내 놓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일은 벌어지지않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몬트리올 일정을 마무리하고 뉴욕행 밤 버스를 탔다.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뉴욕행 버스는 중간중간 까다로운 입국심사와 성가실 정도로 해대는 짐검사들 빼고는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전 11시쯤 뉴욕에 도착했다.
"할. 렐. 루. 야~~~!!"
뉴욕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정신없는 곳이었다. 숙소를 찾는데 역대급으로 헤맸으며 사람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뒤섞여 당시 내게 있어 뉴욕의 첫인상은 '와글와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길을 묻는 나에게 뉴요커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SORRY!!"
"I'm SORRY about that!!"
"SORRY~ SORRY"
처음에는 뉴욕이 너무 복잡해서 이곳에 사는 뉴요커들조차도 길을 잘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너무 바빠서 한낱 이방인의 길 찾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한 나는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20킬로짜리 배낭을 메고 한 시간 넘게 뉴욕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체크인 후 먹거리를 사기 위해 밖을 나섰다. 여기저기를 또 걷다 보니 주변에 센트럴파크가 있다 걸 발견했다.
"센트럴파크!!"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저기서 조깅은 한번 해봐야지!'
나는 얼른 다시 숙소로 들어와 운동화와 KOREA 글자가 새겨진 흰 티셔츠를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나도 뛰기 시작했다.
'오늘 나도 뉴요커다!'
어느새, 해는 어스름하게 지고 있었지만 나는 열심히 뛰었다. 밤새 버스에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아니면 뉴욕거리를 너무 헤매어서 그런지 숨이 금방 턱끝까지 차올랐다. 잠시 숨 고르기 하고 다시 달렸다.
이렇게 달리다 걷다를 반복한 내가 다시 헐떡거리며 달리기를 멈추려 할 때였다.
"Don't Stop! Don't Stop! "
내 뒤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나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웃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Don't Stop! Don't Stop! "
나는 헐떡거리는 숨을 잠시 거두고 내 옆을 지나가던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또한 웃으며 계속 달려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달리던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KOREAN?"
"YES!"
"YOU'RE KOREAN???"
"YES!"
그는 한국인을 처음 보는 듯했다. 신기함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에게서 쌀쌀한 뉴욕의 날씨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콧 밑으로 쭈르륵 흐르는 콧물을 한번 쓰윽 닦더니 손을 내밀었다.
"NICE TO MEET YOU!"
생애처음 한국인을 만나 억세게 반가운 건 알겠으나 손에 그대로 묻은 콧물은 좀 그랬다. 아니, 아주 많이 그랬다. 내 생애 이렇게 더러운 인사는 처음이었지만 이것 또한 그저 뉴욕스타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