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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un 05. 2024

80. 내가 만난 100인

동쪽에서 만난 귀인

<서글픈~ 사랑 안녕 지친 세월 안고 홀로 견딘 나의 기다림 모두 부질없으니~>


거리에서는 조관우의 '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20년밖에 살 지않은 내가 왜 하필 그 거리에서 이 노래에 꽂혔을까? 

이런 복잡 미묘한 허상에 빠져 횡단보도 앞을 서있었다. 


'대학생이 되었는데 왜 하나도 즐겁지 않을까?'

'왜  우리 집은 항상 시끄러운가?'


그때였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어떤 여대생이 내 앞으로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를 공부하는 교대학생인데 얼굴에 우환이 가득하셔서 여쭤봅니다."


'허걱! 어떻게 알았지?'


젊지만 미래는 더 아득했던 그 시절, 나는 동쪽에서 나타난 귀인이 뒤죽박죽 엉켜있던 내 마음의 실타래가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길을 걷다 꼭 우연히 마주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젊은이'라고 부르며 뭔가를 예언을 해 주면서 주인공의 인생이 역전 되지 않던가.


"정확하세요! 어떻게 아세요?"

"제가 도를 공부해서 그런 거 잘 알아봐요."

"오~ 신기하다. "

"집안에 안 좋은 일도 있고, 본인의 일도 잘 안 풀리나 봐요."

"맞아요. 너무 힘들어요."

"그렇죠? 그럴 거예요. 아마 앞으로도 더 그럴 거예요."

"아니. 왜요?"

" 제가 지금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목이 너무 말라서요. 혹시 저기 가서 콜라 한잔만 사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얼른 가요."


그녀와 나는 길 건너 롯데리아로 들어갔다.

"콜라  하나로 되나요? 혹시 배는 안 고프세요?"

"저는 콜라면 충분합니다."


그녀는 연습장을 꺼내더니 먼저 나의 생년월일과 한자를 물었다. 한자를 쓰는 필체로 보아 그녀는 제법 똑똑해 보였다.

"기영 씨의 생년월일과 이름 보니 지금 조상님이 기영 씨를 필요로 하세요."

"조상님이요?"

"조상님이 조금 화가 나셔서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는 거고, 기영 씨 일이 뜻대로 안 풀리는 것 같아요."

"아~"

"그러니까 지금 집안의 이 우환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기영씨뿐이에요."


갑자기 내가 집안의 기둥이 된 것 같은 막중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인 것 같아 정의감마저 끓어올랐다.

"제가요?"

"네. 지금 조상님은 기영 씨를 필요로 하세요?"

"제가 그럼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제사를 지내야죠?"


'제사 모시는 걸 구경만 했던 나. 제삿밥을 맛있게 먹기만 했던 나. 그런 내가 제자를 지내야 한다고?'

내 머릿속은 더 엉켜버렸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사는 우리가 다 드려 줄 수 있어요."

"오!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단지 제사 비용은 기영 씨가 부담해야 해요. 왜냐하면 조상님은 정성을 보시거든요."

"정성이요..."

"지금 돈이 얼마 있어요?"


나는 내 주머니에 든 16000원과 통장잔고를 생각했다.

"약 17만 원 정도 있어요."

"아! 그걸로는 정성이 조금 부족해요, 보통 제사비는 20만 원이 넘어요."

"20만 원이요? 다음 주에 용돈을 받아요. 그걸 받으면 얼추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조상님도 다 때가 있어요. 다음 주까지는 때가 너무 늦어요."

"아........ 어쩌죠?"

"조상님도 착한 거짓말은 용서하세요. 그러니까 집에 가서 전공책 산다고 하고 내일 10만 원 정도 더 받아서 와요."


<띵!>


내 머릿속에서 정신 차리라는 징소리가 났다. 내가 이 정도로 어리바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교재비를 사기 치는 착한 거짓말 따위는 없다. 그리고 그걸 용서하는 조상님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오늘 밤 부모님께 책 사야 한다고 하고 돈을 받아볼게요."


나는 그녀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끝번호를 두 자리 바꾼 번호를 알려주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혼자 중얼중얼거렸다.


'욕심이 과했어. 그냥 17만 원만 달라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뽑아서 줬을 텐데...'


를 아는 자

는 모르지만 그녀의 (의)도는 아는 자


진짜 도만 닦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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