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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un 11. 2024

81. 내가 만난 100인

눈먼 자 = 어른

빵집 아르바이트 6개월 만에 또다른 신입이 들어왔다.

자칭 빵순이, 그녀는 빵을 너무 좋아해서 여기를 지원했다고 했다. 티 없이 맑고,  한 없이 밝은 그녀를 본 순간  사장님의 채용의도를 알것같았다.


행동은 서툴러도 항상 웃고, 잘 먹고, 잘 믿는 정직한 스타일이었다.

신입교육임무는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최대한 딱딱한 말투로 그녀에게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나의 전문가스런 말투 때문인지 그녀는 교육받는 내내 나를 추앙하는 것 같았다.


"금방 나온 빵은 절대 포장하면 안 돼. 빵이 망가지거나 눅눅 해지거든."

"아~~~~ 네!"

"그리고 포장된 빵은 뒤에서부터 진열해야 해. "

"네?"

"버스 정류장 앞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에 있는 빵부터 집어가. 최대한 재고 빵들을 앞으로 당겨 놓아야 먼저 처리가 돼."

"오~! 이런 전략이 있었군요."


그녀의 격한 반응으로 나 또한 뭔가가 된 것처럼 마냥 으쓱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리본매듭이 되어있는 빵은 어제 나온 빵들이야. 오늘 새로 구워진 빵이 나오면 어제 빵들은 이렇게 리본으로 매듭지어 맨 앞에 진열하고 오늘건 뒤에.. 알지?"


"오~! 잘 알겠습니다."


"갓 구워진 빵은 저쪽 진열대 가서 식히면 돼."

"언니!! 빵 냄새 너무 좋아요. 이거 하나만 먹어봐도 돼요?"


나는  그녀에게 마음껏 먹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잘 먹겠습니다."


마치 내가 주인인 처럼 어깨를 한번 더 으쓱하고는 다시 교육을 이어갔다. 그녀는 빵을 한입 가득 욱여넣은 뒤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며 다시 집중했다.


"이건 러스크라는 빵인데 계란, 버터, 설탕을 묻혀 구운 빵이야. 인기가 많아. 그런데 어제 비가 와서 눅눅해지는 바람에 재고가 쌓였어. 그래서 오늘은 시식용으로 돌릴 거야."


그때 손님이 왔다.

"자! 공손히 인사하고 네가 한 번 해 봐."

"넵! 어서 오세요~"


난 한 발짝 떨어져 빵을 정리한 척하며 그녀를 응시했다. 이것저것 묻는 것으로 보아 단골은 아니었다. 그냥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들른 듯했다.


"이건 황남빵인가요?"

"네. 저희가 직접 팥을 끓여 만든 거라 경주 황남빵보다 달지 않아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해요."

"이거는 요?"

"아! 이거는 요.."


그녀는 살짝 긴장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잘해나가고 있었다. 사각지대하나 없는 공간에서 최대치로 용을 쓰고 있었지만 이전 아르바이트생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이전 아르바이트생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빵이름과 가격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한참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이 손님은 이것저것 묻기만 하고 빵은 사지 않았다. 그리고는 시식용 러스크를 맛보며 물었다.


"어머!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눅눅해?"

"아! 이거 어제 나온 빵이라서요. 어제 비가 와서 더 눅눅해진..."

"어머! 버스 왔네요!! 다음에 올게. 아가씨"

"아~네~안녕히 가세요!"


그 손님이 제대로 들었는지는 나중문제였다. 나는 그녀를  치며 말했다.

"어제 나온 빵이라고 말하면 어떡해?"


그녀는 본인이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듯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왜요? 언니.? 아니 그럼.. 혹시.. 이거......

엊그제 빵이예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그때 나는 순간 눈먼 자가 되었다. 그녀의 사회성을 걱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이 빵집에 온 첫날 우연히 주방장님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걸 들었다.


"그럼 우리 다음주에 파리에서 만나는 걸로 하자~"


유능한 제빵사라 파리로 휴가를 가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뉴욕여행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나는 시급 3000원을 받으며 빵 포장을 하고 있는데 그는 벌써 파리로 휴가를 가는 것이었다. 나도 빨리 자리 잡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주방님이 퇴근하시면서 다시 큰 소리로 통화를 또 이어갔다.


"다음주 파리는 스케줄이 좀 애매하니까 그냥 우리 뉴욕에서 만나는 게 어때?"


방금 그가 '뉴욕'이라고 했다. 사실 주방장님을 첫인상은 키도 작고 파리나 뉴욕을 갈 정도로 그렇게 부티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저 한마디로 인해 그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처지는 끝도 없이 나오는 빵을 굼뜬 손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그때 주방막내가 청소를 마치고 나오더니 나를 힐끗 보더니 한숨 쉬며 말했다.


"누나,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이 속도로 하다가는 오늘 안에 이걸 다 못하고 잘릴지도 몰라요."

"아~안 돼요. 나도 주방장님처럼 뉴욕가야한단 말이에요?"

"뉴욕이요? 거길 누나가 가요? 이제 거기서도 아르바이트해요?"

"뉴욕에서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해요? 영어도 못하는데... "

"영어요? 뉴욕빵집에서 일하는 데 영어가 왜 필요하지?"


그랬다. 주방장님이 말하는 파리는 파리바게트였고, 뉴욕은 바로 뉴욕빵집이었다.

이들은 서로 친구였고, 마치고 한잔하기 위한 접선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순진하게 나는 진짜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의 사회성도 누군가가 아주 걱정할 정도이긴 했다.


혼자서 개구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

혼자서 눈부신 올챙이 시절을 겪었다고 자부하는 자.


우리는 모두 앞, 뒤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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