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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an 03. 2023

2. 내가 만난 100인

범어역 할머니들

범어역에서 브런치를 하기로 했다.

범어역은 역사의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라 출구까지 나가려면 긴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이나 타야 했다.

지하철이 토해내는 많은 인파에 섞여  겨우 에스컬레이터에 한 발을 얹었다. 곧바로 우리 뒤에는 계모임을 나오신듯한 할머니 무리들이  더 조심스레 발을 올렸다.

무리가 무사히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한 걸 확인 한 할머니들은 긴 구간을 안도의 한숨과 신세한탄으로 섞어가셨다.


"어이구~ 조금만 젊었으면 저기 저 계단으로 걸어가면 되는데... 늙어서 이거라도 꼭 붙잡고 타야 하는 신세가... 원.."

"그래, 말대로 늙으면 이래 모든 것들이 다 서럽다.

이놈 하나 타겠다고 이래 부산스럽게..."

"그래, 이놈 없으면 오늘 안에 우리는 이 을 빠져나가지도 못해."

그 한마디에 할머니들 사이에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분위기가 다운되는듯했다.

"뭐 좋은 꼴 보겠다고 이 날 이때껏 살아서는  관절도 다 나가고,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 하여간 늙으면 빨리 죽어야 ."

"그래 , 늙으면 빨리 죽어야 돼."


우리는 본의 아니게 할머니들의 대화에 끼게 되면서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이 놈 하나 타겠다고 뛰어온 서로의 모습이 떠올라  민망스러운 듯 서로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할머니들은 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젊음이 좋은 거야. 우리는 여태껏 오래 살아서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래!! 우리는  많이 살았어."


 다시 서로를 보며 피식피식 거리다 그러다 그만 몸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만 뒤에 서 있는 할머니들에게 몸이 기울어졌고,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 어떻게 해?"

"어~~~~ 허 이 아가씨가 왜 이래?"


하지만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할머니들은 에스컬레이터를 양손으로 꼭 붙잡고 계셨고, 반대로 지금 당장 죽고 싶지 않은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 한 손만 슬쩍 걸친 채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죽고 싶다는

빨리 죽고 싶지 않다던 자

다 거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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