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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an 05. 2023

3. 내가 만난 100인

주유소

나의 첫 사회생활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부터 시작되었다.

수능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은 채점을 위해 수능시험지를,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벼룩신문을 뒤적거렸다.


ㅇㅇ주유소.

주유원 구함

평일 15시 ~21시까지

시급 1500원


주유소 위치는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밖에 되지 않았다.

면접 때 사장님은 어느 학교에 몇 학년인지만 물어보신 뒤 바로 나를 채용했다.

그리고는 나보다 몇 개월 먼저 들어온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얘는 내일부터 같이 일하게 될 거야. 나이는 너랑 동갑이고, 아르바이는 처음이라고 하니까 네가 잘 가르쳐줘."

"네~"

껄렁거리는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한눈에 봐도 그녀가 나와는 결이 다른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봐! 이건 주유건이야. 오른쪽 휘발유이고 왼쪽은 경유야. 차 들이 알아서 그 앞에 설 거야. 그러면 먼저 인사부 터하고 얼마를 주유할 건 지 물어봐. 그리고 가격을 입력하고, 주유구 뚜껑을 열고 이렇게 바로 주유건을 당기면 돼."

"아~"

"이해했지?"

"대충."

"인문계생이라 이해는 금방 할 거야."


때마침 주유소로 자동차 한 대가 들어왔다.

"따라와!"

"다시 잘 봐."

"어서 오세요? 손님 얼마를 주유해 드릴까요?"

"만-땅"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내가 혼잣말을 했다.

"만땅?"

"가득 넣어달라는 뜻이야. 주유소 용어니까 외워둬."


잠시 후 또다시 차가 한대 더 들어오더니 반대편 주유기 앞에 멈추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눈짓하며 내게 말했다.

"뭐 해? 가 봐!"

"어.... 어.. 어서오세요. 손님."

얼떨결에 나는 그녀에게 배운 대로 손님에게 뛰어갔다.

"얼마를 주유해 드릴까요?"

"풀~!"

"푸~울이요?"


"가득 넣어 달라는 거야. 영어로 full."


반대편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때 나는 비록 시작은 버벅거렸지만  왠지 모를 오기기가 발동했다. 또 그녀가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 더 침착하게 주유구를 열었다. 호스를 잡고 구멍에 넣어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겨 주유를 시작했다.


...


 호스 기를 통해 기름이 세차게 흘러가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나는 뭔가를 제대로 해 냈다는 뿌듯함에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보지 않고 의자에 앉아 새로 산 휴대폰 고리를 달고 있었다.

손님을 보내고 자리로 돌아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에게 다짜고짜 그녀가 쏘아붙였다.


"야~ 너는 인문계생이 full이라는 영어 단어도 모르냐? 여상 다니는 나보다 영어를  못하냐?"

"그 이 그 Full인지 몰랐어."

"아이 됐고!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리고 사장님한테는 비밀이다."


주유를 하는 일보다 그녀를 대하는 일이 더 힘들었던 나의 첫 아르바이트 3일째 되던 날이었다.

큰 SUV 한 대가 주유소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는 전화통화 중이라 내게 나가 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어서 오세요? 얼마를 주유해 드릴까요?"

"만땅"

"네. 만땅 주유하겠습니다."


비록 3일 차이긴 했으나, 용어도 제법 익숙해지는 듯했고 일에도 자신감이 조금 붙어있었다. 주유를 하는 동안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았고 웃으며 창밖만 보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손님에게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그거 경유 맞아?"

"네? 휘발유인데요?"

"야! 너 미쳤어? 이거 경유차야."

"네?"

"너 때문에 엔진 다 나갔어."


손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차 밖으로 나왔고 이 상황을 제대로 알리가 없는 나는 여전히 경유차에 휘발유를 만땅으로 주유하고 있었다. 놀란 그녀도 허겁지겁 밖으로 나오더니 주유를 끄고 내 손에서 주유기를 얼른 뺏아갔다. 뒤이어 사장님도 나오면서 손님께 머리 숙여 먼저 사과를 하셨다. 그리고 차분히 그녀에게 말했다.

"얼른 ㅇㅇ정비소로 뛰어가 경진이 삼촌 불러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정말 경진이 삼촌같이 생기신 분이 장비가방을 들고 투덜거리며 주유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힐끗 보고는 지나치더니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일 올 때마다 이런 사고를 치냐? 벌써 몇 번째냐?"


그리고는 덩치에 비해 재빠른 몸놀림으로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내가 만땅으로 주유한 휘발유를 빼냈다. 그리고는 엔진을 점검했다.  옆에서 손님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않는지 씩씩대고 있었다.

"엔진은 보나 마나야.  소리부터가 벌써 달랐어. 이미 끝났어. 아까"

그런데 그때  경진이 삼촌의 한마다는 마치 나에게 신의 음성처럼들렸다. 그는 동글동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엔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급히 사장님은 손님의 화부터 누그러뜨리고  서비스로 경유 만땅을 제공하셨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일단락이 되고 사장님은 바지를 툭툭 털며 말씀하셨다.

"하필 저 차가 휘발유 앞에 서 있을게 뭐야?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고 큰 차들은 경유 차니까 주유하기 전에 꼭 물어봐."


다시 그 자리에는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잠시 악몽을 꾼 듯한 나는 기진맥진한 채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때 그녀는 핸드폰 고리를 만지작 거리더니 한숨을 쉬며 한마디 했다.


"에ㅡ휴 .벌써부터 저런 사고나 치다니... 너도 참 앞으로 사회생활하기 힘들겠다.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게."


 내 미래의 사회생활을 걱정하던 자.

그대의 현재 사회생활이  궁금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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