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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an 09. 2023

4. 내가 만난 100인

 내 안에 MZ

영국에서 유학 중인 제자로부터 한통의 메일 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한국에서 키우던 고양이마저 갑자기 하늘나라고 가벼렸는데 거기에 2년 동안 사귄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고 한다. 지금 자신에게 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를 몰라 주변의 어른들에게 얘기를 듣고 싶어서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어른...

이 단어에 순간 멈칫하더니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못했다.'

절망에 빠진 제자에게 '그냥 하루, 하루를 살아. 그리고 그렇게 버텨'라고 어줍지 않은 조언을 하고는 조용히 메일함을 닫았다.



요즘 MZ세대와 일 하는 게 살짝 버거운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꼰대세대이고 거기에 자부심까지 곁들여져 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우리 꼰대들은 이 만큼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10대 때는 규칙을 아주 잘 지켰고, 20대 때는 다양한 경험 쌓았으며, 30대 때는 수많은 기로에서 한 선택을 책임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40대 일단 한번 그대로를 버텨보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버텨 온 데에는 나 혼자 잘나서 여기까지 온 줄 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MZ세대인 신입선생님들도 엄청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제자에게 했던 어줍게 조언한 내 말과는 다른 하루, 하루를 개인레슨이나 자기 계발등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가끔 그들에게서 엄청난 열정과 자부심에 비해 뭔가가 어긋나 보이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출근을 너무 딱맞쳐서 하다 보니  몇 분씩 지각을 한다. 하지만 퇴근은 지각없이 칼 같이 한다. 전날 수업의 피드백을 할 때면 모든 게 괜찮고, 좋았다 그리고 본인이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비해 학생들에게 들려오는 수업평가는 그렇게 좋지가 않다. 가끔 학원으로 개인레슨 의뢰가 들어와 선생님들께 추천해 준다. 수업방향과 학생성향이 먼저라고 생각한 내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수업시간과 수업료 측정이 먼저였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행동이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분명 나 또한 저랬을 것이다.

혼자힘으로 유학을 하고, 혼자힘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따내고, 혼자 힘으로  자격증을 따서 강사가 되었다. 이 모든 게 나 혼자 힘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라고 자부하며 이력서에 한 줄 한 줄 채워나갔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게 나 혼자 힘으로 한 것이 맞을까?


나 또한 내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분명 주변에 어른들이 있었다.

서툴지만 자신감 하나로 밀어붙였던 부족한 내 젊음을 관대하게 바라봐주는 어른,

때론 실수를 모른 척해주거나 덮어주는 그런 어른,

그리고 자신의 잣대보다는 타인의 잣대로 바라봐 주는 그런 어른들이 분명 있었다.

지금의 나처럼 하나하나를 뾰족뾰족하게 바라보는 그런 어른이 아니라 정말 어른다운 어른, 

그런 어른이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자.

아직 어른이 되지 못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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