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영 Jan 11. 2023

5. 내가 만난 100인

람보르기니

2006년, 한번쯤은 낯선 도시의 바람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저 잠시 잠깐 머무는 여행자의 삶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무는 거주자의 삶을 갈망했다.

그런 생각이 흘러, 흘러 아랍에미레이츠의 '두바이'라는 도시까지 혼자 오게 되었다.

두바이에서 나의 직업은 유일한 단 한 명의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당시 두바이는 인공도시개발계획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조금씩 받고 있는 단계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만수르가 알려지기 훨씬 전이라 '아랍'이라는 낯섦의 끝장판 아닐 수가 없었다. 두바이는 전체 인구 중 자국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퍼센트이며 나머지 90퍼센트는 나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우리는 아랍어가 아닌 영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 두바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새롭고 화려기만한 산유국다운 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두바이 시장에 먼저 뛰어든 한국 대기업들로 인해 주재원들과 사업가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략 200 가구의 한인공동체가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한인교회. 한인 마트, 식당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 향수병은 달랠 수 있었다.

아랍인들에게 한국인은 그저 부유하고 아주 깨끗한 민족이라는 이미지로 각인 중이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중국인들과 구분해내지 못했다.

두바이에서 거주하는 동양인들은 필리핀, 중국,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중국인과 필리핀인들은 하우스 메이드를 하거나 매춘부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대기업 주재원들이다 보니 나름의 엘리트계층이었으며 약간 식견이 있는 아랍인들은 우리를 용케 구분해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의 아홉은 중국인으로 보았다. 이건 마치 우리가 캐나다인과 미국인을 구분해 내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엄청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두바이에 온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50도 가까운 더위에 익숙해져갔다. 조금 불편했던 건 나를 보는 아랍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그들은 나를  깔끔한 중국인, 아름다운 중국인, 도도한 중국인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의 외모가 이 나라에서 먹힌다는 사실을... 어딜 가나 그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따라붙어서는 연락처를 주곤 했다. 한 아랍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랍인들은 마르고 까만 피부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통하고 하얗고 쌍꺼풀 없는 즉 한국에선 흔하게 묻히는 외모가 이곳에서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무쌍의 통통하고 하얀 얼굴의 여인들이여 '나도 두바이를 가볼까?'라는 설레발은 치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문제는 그렇게 통하는 외모를 가져도 그들 눈에는 일단은 나는 중국인으로 먼저 비춰지곤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두짓두바이 호텔 앞을 지나는데 까만색 람보르기니가 한 대 서 있었다. 당시 검색했을 때 이 차는 한국에서 단 한대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람보르기니를 이곳에서 그것도 아무런 노력 없이 실물로 영접하게 되다니 아주 뛸듯이 기뻤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차주인은 두바이 로컬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인사했다.


"안녕"

"안녕."

"이 차가 람보르기니지? 정말 멋있다. 나 사진 좀 찍어 될까?"

"그래~ 맘껏 찍어."

"고마워!"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람보르기니의 앞, 뒤, 옆을 돌아다니며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 와중에 그가 더 많은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신호로 오픈카의 진면모인 선루프까지 열어주었다. 나는 마치 한마리의 공작새가  눈앞에서 크게 날갯짓하 듯 드러내는 화려한 람보르기니의 자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렌즈에 담았다.


"우~와! 정말 고마워!! 진짜 이 차 대박이야."

"네가 원한다면 차를 한번 타봐도 돼. 사진은 내가 찍어 줄게."

"진짜? 그래도 돼?

"물론이지. 얼른 타 봐."


부자는 불친절하다는 말은 그저 한국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두바이부자는 진짜 관대하고 친절했다. 그는 젠틀하게 운전석 문을 열어주고는 마치 내가 람보르기니의 주인 것처럼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돌려받으며 그가 찍어준 사진을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오늘 싸이월드는 완전 내 세상이겠구나.'


"사진 마음에 들어?"

"그럼. 완전 맘에 들어. 너의 친절함도 정말 고마웠어.

좋은 하루 보내고 잘 가"

"저기.."

"응?"


머뭇거리며 그가 입을 열었을때 나는 당연히 그가 내 연락처를 물어올줄 알았다.


"넌 얼마니?"


그랬다. 그 또한 나를 중국인으로 보고 있었고 하필이면 그곳이 호텔 앞이라 매춘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순간 기분은 완전히 상했지만 그렇게 생소한 일도 아닐뿐더러 덕분에 멋진 사진도 한 장 건졌으니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라구?"

"너 얼마냐구?"

"나?니 차 주면 돼!"(Give me your car!!!)

"?"

"네 차 주면 내가 오늘밤 너랑 한번 즐겨줄게."


그는 의외로 비싼 나의 몸값에 놀라서 웃음이 터져 나오건지 내 대답이 기발해서 웃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순간 돌아서 람보르기니 본넷을 몇 번 두들이더니 어깨를 들썩들썩 거리며  깔깔깔 웃었다.

"하~하~ 하~ 너 4억? 너 4억짜리야? 맙소사!"

"난 4억이 아니라 난 한국인이야."

"오~미안해! 정말 미안! 한국인이었어?"

"괜찮아~! 오늘은 고마웠어. 만약 내가 중국인이었으면 오늘 밤 네 차는 날아갔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멋진 한방이었다.


하나만 가지지 못한 자.

하나만 가진 자.




매거진의 이전글 4. 내가 만난 100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