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비롯된 예민함

캐나다? 피할 곳은 없어요

by 정언명령

아무래도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관계의 상호작용도 많아진다.

그에 따라 첫 만남에서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느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라?' 였던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스스로 예민해진다. 그리고 요즘 예민함을 참을 수 없는 '나'를 본다. 그런 '나'는 화를 견디다 다시금 포기하는 단계를 맞이한다.


사실 마냥 포기는 아니다. 실컷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다독이며, 포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가 주는 피로도로 인해 타지 생활을 꿈꾸고, 계획한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잘 순응하고, 적응하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유독 '나'만 어울리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고, 스며들지 못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방인의 삶을 꿈꾼다.

허나 막상 떠날 때가 되면 그곳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든다.

많은 것들을 내버려 두고, 사랑하는 이들을 등지고 하는 선택이기에 내 선택이 틀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그러한 걱정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보통 그러한 걱정은 사실로 실현된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고, 날 예민하게 만드는 이는 늘 내 곁에 있게 된다.


나 역시 갈수록 예민해지는 나를 느낀다.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여전히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다. 그렇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있는, 그 기운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나를 느낀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해답은 뭘까. 고국에서처럼 끝없이 참아내야 하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당당하게 맞서는 게 새로운 해답일까.


현명한 게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 그저 '한국에서보다는 덜해'라는 합리화로 나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맞서 싸워서 결국에 범접할 수 없는 내 위치를 만드는 것이 맞을까.


어느 것 하나 끌리는 것이 없다. 두 가지 모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러고 싶지 않다.


이방인 혹은 제3자의 삶을 살고 싶다.

사회생활의 나와 일상생활의 나의 분리

제3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없어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집에 있다.


그리고 집은 나 혼자가 아닌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존재한다.


뭔가 이곳은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와의 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그들과 힘든 사회생활을 공유하기보다는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그런 삶.


그런 삶을 사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러려고 여기 왔다.

너무 많은 액션을 취하려고 하지 말아 보자

일터의 나와 집에서의 나의 분리.


그것이 여기 사람들이 고국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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