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외국인 노동자의 삶

분명해지는 이방인의 삶의 장점

by 정언명령

워홀러로서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일종의 회의감이 찾아왔다.

분명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고, 이상향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넓디넓은 땅에서의 좁은 시각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모두가 옹졸해지고, 조금 더,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안 될까 싶지만 다들 거시적이지 못한 방향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본''기준'이 남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이 고국에서는 잘 적용이 되지 않았다. 나의 '기본'이 남의 '기본'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의 '기본'이 존중되는 곳으로 오고자 했다.


그리고 일종의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곳, 삶을 만족한다.


적어도 이곳은 드러나는 오해와 논란은 없다.

한국에서의 '나'는 정말 늘 오해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아무리 관심을 끌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 즉,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 등을 벗어나면 나는 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면 커리어 성장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즉, 모두의 대화 주제가 되어야만 했다. 더 정확하게는 오피셜 한, 오픈된 대화 주제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사회생활에서의 관계에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인 관계에서 오는 논란은 현저하게 낮다. 그래서 그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없는 수준이다. 성향이나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다름으로 인한 '적대감'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또한 이방인의 나라답게 각자의 언어가 난무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영어 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지 않다. 각각의 이방인들은 짧은 영어 수준으로 서로의 필요한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히려 용건만 간단히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려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야 들을 수 없다.


즉,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삶,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삶이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만족한다. 이 정도로라면 여기서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 정도라면 굳이 돌아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떠나온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지내는 이유, 돌아가는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삶을 유지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준다.


그래서 잘한 선택이라고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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