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한국을 떠나온 뒤로 지난 일들에 얽매이기 싫어 의도적으로 그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피했다. '만약에 우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최근 내 마음의 조그마한 여유가 생겨서인지 아니면 다시금 고통을 즐기고 싶어서인지 그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첫사랑을, 지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비슷하다.
그 당시의 내가 처한 상황, 열악하고 피할 곳 없는 환경이 주는 어쩔 수 없음.
돌아보면 어차피 지난 일들, 결국에는 이겨낼 일들이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것을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끊어냄으로써 이겨낸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그때를 떠올려봤자 아무 짝에 쓸모없다. 돌아간다고 한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아쉽다. 무언가 완벽하지 않은 나를, 미완성의 나를 자책하고 숨겨야 하는 상황. 그런 사회적인 인식.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 서로가 명함을 주고받으며, '꿈을 이루었구나'를 해야 하는 엔딩.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고, 여전한데 그때의 나는 어떠한 성공을 위해서 그렇게 마음 졸이고 상대방의 목을 매게 했을까.
물론 나도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그를 회상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르게 여유로워졌는지 너스레 떨 수 없다. 다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옹졸했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여전히 옹졸한 놈일 것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다시 만났을 때 떳떳한, 성공한 그런 삶을 포기하고 해외로 떠나온 나로서는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꼭 지나고 나서는 성공하고, 멋진 잡 타이틀로 서로를 소개해야 할까. 지금 내가 아무 일도 없고,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야 할까.
그런 마음들이 나는 미완성의 나를 만들고, 그 미완성의 나를 채워지지 않는 연인을 밀어낸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전히 미완성인 것을.. 불완전함이 주는 불안함은 언제나 똑같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를 옥죄여 온다. 그래서 그 잔인한 손길을 굳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줄 필요가 있을까.
캐나다라고 조금 다를까 싶다. 여기서 만나는 연인들은 우리가 숱하게 헤어지는 이유로, 그 같은 이유로 이별을 택할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조금은 한국에서도 명함 하나에 연연하지 않은 만남을 이어갔으면 한다.
어쩌면 온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