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 행차, 그리고 콩

왕의 길 위에서 발견하는 조선의 식문화

by 두부

795년 윤2월, 조선의 왕 정조는 긴 길을 떠난다.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 화성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PhotoshopExtension_Image (3).jpeg

[사진=원행을묘정리의궤 / 혜경궁 홍씨의 회갑 행차 행렬]

이 행차는 단순한 왕의 이동이 아니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한 길이었다. 약 8일 동안 이어진 이 여정에는 왕실 수행원과 군사, 관리, 그리고 행차를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다. 그 규모만 보아도 당시 조선이 얼마나 큰 준비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행차의 모든 과정은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기록에 남아 있다. 의궤는 왕의 행렬과 의례, 숙영지 준비, 연회 음식까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기록을 읽다 보면 단순한 역사 사건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기록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장면이 궁금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는 길 위에서, 과연 무엇을 먹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왕을 위한 연회 음식은 분명 화려했을 것이다. 궁중 음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였고, 조선의 미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정교한 조리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길에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재료가 있다. 콩이다.


조선의 식문화에서 콩은 늘 조용하지만 중요한 재료였다. 콩으로 만든 메주는 된장과 간장이 되었고, 그 장은 거의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었다. 국과 탕, 찜과 나물까지 조선 음식의 맛은 대부분 장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궁중 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의 연회에는 다양한 탕과 전골, 찜과 전, 병과가 올랐지만 그 맛을 완성하는 조미는 대부분 간장과 된장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콩은 거의 모든 음식의 바탕에 있었다.

정조가 건설한 화성 역시 이런 일상의 구조 속에 있었다. 화성은 단순히 성곽을 쌓은 도시가 아니었다. 군사와 행정, 그리고 경제가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한 정조의 계획이 담긴 공간이었다.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식량이 필요하다. 수원과 경기 남부 지역은 조선 후기에도 농업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었다. 논에서는 벼가 자라고, 밭에서는 보리와 콩 같은 작물이 재배되었다. 특히 콩은 장을 만들고 두부를 만들며 사람들의 식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재료였다.


그래서일까. 화성 행차를 떠올리다 보면 왕의 화려한 연회보다도, 그 뒤에서 묵묵히 사람들의 밥상을 지탱했을 식재료들이 먼저 생각난다. 기록 속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수천 명이 이동하는 길 위에서 장과 콩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짐작해보게 된다.


1795년의 화성 행차는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길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왕의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었으며, 그 음식의 시작에는 늘 콩이 있었다.


화려한 궁중 음식의 이름은 기록 속에 남았지만, 그 맛의 시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풍경이 떠오른다. 조선의 밥상처럼, 왕의 행차 역시 장과 콩에서 시작된 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음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왕의 이야기보다도 사람들의 밥상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그 밥상에는 언제나 콩이 있었다.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 ˶˙ᵕ˙˶ )□

매거진의 이전글영조가 먹던 순창 고추장은 지금의 고추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