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모라서 미안.
역시 방학은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취준생에게 방학이란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편입학을 했지만 학교 생활은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도 실기가 주였던 학과를 졸업하다 보니 과제 제출에 익숙 익숙했다. 중간중간에 내는 과제와 리포트 제출, 시험은 조금 괴로웠다. 그래도 약간의 중복되는 강의들도 있다 보니 다행히도 이득을 보기도 했다. 학교 생활하면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도 보러 다녔다. 그런 시간에도 중간중간에 조카 '캡틴'이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 가까우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조금을 멀게 느껴지는 거리라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 있을 때 보러 갔었다. 그렇다고 캡틴이 가 아직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단계까지의 성장이 되지 않았지만 그냥 얼굴만 봐도 힐링이 된다. 품에서 안겨 잠들 때가 세상 제일 이뻤다.
자신과의 싸움.
아기들의 성장은 정말 말도 못 하게 빨랐다. '언제 기어 다닐래?' 했던 캡틴이는 컬러 세상과 마주하고 얼마 안 되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팔다리 근육이 조금 생겼는지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한 방향으로 휙 하고 뒤집힐 듯하면서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 오뚝이처럼 다시 발라당 누워져서 울어버리던가, 넘어가려고 어떻게든 힘으로 버텨본다. 그러다 안되면 또 운다. 그렇게 과묵하던 캡틴이 가 왜 이렇게 우는 애가 됐냐고 했더니 이거 '가짜 울음'이라고 쌍둥이 동생이 알려줬다. 처음인 이모는 당했다. '가짜 울음'에 당한 것이다. 진짜 울 때는 눈물도 같이 난다고 한다. 가짜 울음에 소리로만 운다고 알려줬다. 아니 이런 것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지 아기들은? 처음인 이모는 무척 당황스럽다. 캡틴이는 이때부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틈만 나면 뒤집기 시도를 계속한다. 그렇게 넘어가는 건 용납할 수 없는지, 반만 넘어간 채 힘으로 버티다가 한쪽 팔이 자기 몸에 눌려서 아팠는지 "빽 -"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까지 터뜨려 버린다. 진짜 아팠나 보다. 아직 아기라 3등신이라서 머리가 커서 체중이 머리 쪽으로 많이 쏠려서 아플 수 있을 것 같다. 캡틴이는 진지할지 몰라도 나는 이런 캡틴이의 행동이 너무 웃겼다. 이제 막 100일이 지나 4개월에 접어 들어갈 때쯤이었다. 엄마의 말로는 뒤집기만 시작하면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건 금방이라고 말하셨다. 아니 지금도 이거 하나 때문에 갓난아이가 이렇게 울어대는데 자기 생각대로 '못 기어 가면 얼마나 많이 울까?'라는 문득 들었다. 그렇게 뒤집기에 진심이었던 캡틴이는 2~3일 동안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냈다. 한번 뒤집고 나니 요령이 생겼는지 뒤집어 놓으면 다시 홀라당 뒤집어 버린다. 가만히 있질 않는다. 아직 머리가 커서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점점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 혼자서 하려고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여기는 이모. 응답하라.
쌍둥이 동생이 중간중간에 캡틴이의 성장 과정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준다. 엄마와 나의 유일한 낙이다. 좋아하는 아이돌 짤보다 더 열심히 줍줍 한다. 그리고 또 영상 통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조카랑 영상통화가 웬 말인가 싶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기들의 성장 속도는 무지막지하다. 이제 뒤집기는 개인기처럼 너무나도 쉽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기의 또 다른 성장 모습을 보여 주려는 듯 영상통화로 이것저것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정말 뒤집기를 시작하고는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는 캡틴이의 행동이 보인다. 온몸에 힘을 줘서 앞뒤로 움직여 보려고 힘쓰는 모습이 보인다. 배밀이를 하면서 팔다리에 힘이 생기고 사용하는 방법만 익히면 금방 기어 다닐 거라는 엄마 말이 사실이었다. 지금 어디에 가려고 저렇게 용쓰나 궁금하다. 아기들도 이렇게 힘을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간절한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도 든다. 조카 캡틴이 녀석 그저 똥쟁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모' 모르게 정말 하루가 무섭게 사람으로 한걸음 두 걸음 성장하고 있는 캡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