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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새 Feb 05. 2022

바다와 캠핑을 즐기는 고양이

13살난 낭만 고양이


우리 집엔 남편 외 또 다른 구성원이 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거의 절반을 함께 살아온 작은 털복숭이. 미국에 살던 2009년 내 생일에 내 아기가 되었고 이젠 13살이나 된 우리 아기다. 이름은 스프링클, 고양이이지만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인간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생명체이고, 스스로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게 분명하니 마냥 고양이라고 불러주기엔 미안하다. 결혼식에도 당당하게 하객으로 참석한 그냥 우리집 아기다.

 

결혼식장 신부대기실에서...

스프링클은 2009년 9월 27일 미국 오레곤의 한 캐터리에서 태어났다. 야생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을 하얀 털과 돼지코를 가진 형제들 중 한 마리로 태어났다. 딱 3개월 되던 날, 2009년 12월 27일에 우리 집으로 왔다. 호스트맘 Tara가 하도 내가 고양이 노래를 불러서 서프라이즈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3개월 아기고양이였다. 어쩜 이렇게 못생겼을까 싶을 정도로 얼마 되지도 않는 털은 제멋대로 자라 어디 흙더미를 굴러다니는 민들레 씨앗 같았다.

 

오른쪽이 스프링클. 만 3개월령

이름은 Sprinkles로 지어줬다. 드라마 The Office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름을 따서 Sprinkles로 지었다. 그 때는 이 고양이가 한국에 와서 13년이나 살고, 이렇게 많은 가족들에게 이름이 불리며 살아갈줄은 몰랐다. 우리 엄마, 이모들, 어머님, 아버님, 남편의 할머니, 고모들.. “스프링?” “스프링쿨러?” “스파크?”의 수모를 겪고 가족들에게는 결국 “양이”라고 불린다.

 

할머니랑 낮잠자는 양이

우리 스프링클은 죽을 고비를 두번이나 넘겼다. 미국의 캐터리에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인지 우리집에 온 이후로 계속 설사를 달고 살았다. 비싼 하드우드 플로어에 찍찍 설사를 지려서 매번 바닥을 닦고 엉덩이를 씻겨주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살도 안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데려가려고 했는데, 건강 검진을 해준 수의사 선생님은 몸무게가 너무 안나가서 못갈 것 같다. 만약 간다고 해도 오래 못살 것 같다. 체질적으로 허약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로부터 몇개월, 스프링클은 쑥쑥 자라서 단단한 끙가도 할 줄 알고, 살도 쪄서 비행기타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두번째 죽을 고비는 스프링클이 4살 되던 해였다. 자꾸 화장실에서 하늘만보고 빨리 나오질 않아서 관찰을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안지나서 오줌에 피가 섞여나오는걸 발견하고 24시간 병원에 갔다. 방광염 진단을 받고 카테터를 끼운채로 돌아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신촌에서 5평짜리 원룸에 살았고, 카테터 끼운 스프링클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줌이 흘러나오는 상태였다. 온 집안이 오줌 투성이었다.

방광염 완치 후 얼마 되지 않아 스프링클이 구토를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는 투명한 토인데, 거품과 피가 살짝 섞여있었다.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조금 심각해보인다며 항문에 넣었다 빼는 변 검사 키트를 진행했다. 워낙 순해서 병원에 가도 가만히 있는 스프링클인데, 변 검사 키트를 끼웠을 때 질렀던 고함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변 검사 키트의 결과는 범백 양성이라고 했다. 고양이를 죽이는 3대 질병 중 하나, 복막염만큼 무서운 범백에 걸렸다고 했다. 백혈구가 감소하는 병으로, 인간으로 치면 백혈병과 비슷하고 치사율은 90%이다. 수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일단 수액을 맞출 수 있게 입원시키고 돌아 나오는데, 수의사가 불러서 돌아봤더니 그 새하얀 스프링클이 피를 마구 토하고 있었다.

입원한 스프링클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알게된 것은, 범백은 전염병이다. 스프링클은 집에만 있고, 다른 동물들과 접촉이 없는데 어디서 걸렸을까? 병원에 물어보니 병원은 항상 소독하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프링클이 방광염으로 입원했을 때 다른 고양이가 범백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병원에서는 범백 접종을 안한 내 잘못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스프링클은 무서운 병에 걸렸고 피를 토하고 있었다.

다음날 병원에 갔는데, 이번엔 다른 수의사가 있었고 그 수의사는 그래도 최대한 살려보자고, 혈청이라는걸 맞을 수 있다고했다. 다른 범백을 앓았던 고양이의 혈청을 주사하는건데, 비용은 100만원 정도, 뒷다리를 못쓰게 되는 등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해달라고 했다. 그날로 바로 혈청이 도착했고 스프링클은 혈청을 맞았다. 그 후 회복하는 1주일동안이 중요한데, 다른 고양이들은 보통 식욕이 사라져서 영양실조로 죽는다고한다. 하지만 스프링클은 잘 먹고 잘 싸서 금새 회복했다. 수의사는 애가 살 의지가 강해서 살아난거라고 했다. 그런 의지를 가진 스프링클에게 너무 고맙다.   


그 후 9년동안 스프링클은 다른 큰 병 치레를 하지 않았다. 수컷 고양이의 숙명인 신부전은 초기 단계이지만 악화되지 않고 몇년간 유지 중이다. 13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너무 잘 먹고 (너무 잘먹음…) 잘 싸서 병원에서도 크게 걱정할게 없다고한다.

스프링클은 내 남편을 만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나랑 3평짜리 원룸에서 시작해서 5평 원룸, 나중엔 10평 1.5룸에 살다가 남편을 만나고 아파트에 입성했고, 하루 4번 (아침 6시, 점심 11시, 오후 4시, 저녁 8시) 맛있는 습식을 먹는다. 때때로 캠핑도 가고, 불멍도하고, 바다도 본다. (사실 내 남편이 스프링클을 만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는데, 이건 또 긴 이야기니 다음에 써야겠다.)

 

아빠 가방에 들어가요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다. 하지만 스프링클은 어릴 때 종종 공원이나 카페에 데려가는 등 자주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서 그런지 새로운 환경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냄새 맡으면서 탐색하다가 주변에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배를 보이고 잠든다. 결혼한 후로는 더 자주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서 점점 더 탐색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젠 완전히 새로운 장소여도 한 30분 탐색하면 끝!

그래서 더 대담해진 우리는 캠핑에도 데려가기로 했다. 야외에서 잠을 자는건 해본적이 없는 고양이이고, 캠핑장엔 주변 야생 고양이들도 많아서 걱정도 했다. 그런데 스프링클이 캠핑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은 너무 경이로웠다.

첫 캠핑은 충청도의 한 숲 속 캠핑장. 실내가 아니라 야외다보니 평소보다 좀 더 탐색이 필요했다. 약간 겁을 먹었는지 텐트와 이너텐트 사이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조금 시간을 주니, 스스로 나와서 우리 옆에 앉아있길 시작했다. 스프링클은 집에서도 우리가 식탁에 앉으면 식탁 옆에, 침실로 들어오면 머리로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오는 등, 우리는 뭉쳐야 사는 패거리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불멍할 땐, 옆에 작은 의자를 뒀더니 알아서 의자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불멍했다. 정확한 정의의 불멍을 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그릉그릉 소리를 내고, 눈도 노곤노곤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처음으로 스프링클과 우리가 같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가을 공기, 따뜻한 장작불, 움츠린 몸의 온기 그리고 나른함.

그리고 밤이 되었다. 스프링클에게는 목줄을 묶어주고 있었지만 역시 걱정했던 것처럼 밤에 고양이들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우리 고양이를 보면, 밤 고양이들에게 얻어 맞을게 분명했다. 잠들었다가 고양이 울음소리에 깬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스프링클이 야전침대 위에 올라가서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불침번서는 이등병처럼 늠름한 폼으로 가장 높은 지대에 올라가 고양이들을 노려보며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고양이들이 조금이라도 얼씬 거리면 그들만의 언어로 쫓아냈다고한다. 정말이지 “우리 애기 다 컸네”가 절로 나왔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스프링클과 함께할 수 있었다. 바닷가 캠핑 5일, 바닷가 펜션 2일, 산속 캠핑 2일 일정이었는데 워낙 자동차도 오래 타봤고 캠핑도 해봐서 걱정이 없었다. 바닷가 캠핑에서 스프링클은 바다를 배웠다. 그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혼자살 때 바다는 나만 보러 갔지, 스프링클은 원룸을 지키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맞은편 빌라들, 가끔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끝없이 펼쳐진 새파란 물을 만났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다와 가장 가까운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바다만 바라봤다. “고양이가 바다가 뭔지 알겠어?”했지만 편안한 자세, 반짝이는 바다에 고정된 눈, 호기심으로 가득찬 코를 보면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끔 나비가 날아와서 같이 놀아주느라 귀찮았지만, 그래도 바다를 바라보는건 즐거워보였다.

 

정말 고양이가 바다가 뭔지 알까? 좋아서 쳐다보는 걸까? 그 마음은 궁금하지만 바다를 좋아한다고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숙소를 옮기면서 어느 곳에 가도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처음엔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나중엔 집에서보다 더 편안하게 늘어져서 콧물까지 흐를 정도로 가르릉거리며 창 밖을 바라본다. 매일 우리 집 베란다를 통해 보던 푸릇푸릇한 나무들, 노란색 운전연습용 자동차들, 회색 도로들, 가끔 보이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뛰어가는 사람들, 멀리 보이는 홈플러스와 키 큰 빌딩과는 다르다는걸 아는지, 고양이는 눈을 떼지 못한다.

사실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아 집구석에만 있어서 답답했는데, 바다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엄마, 좀 자주 오자!”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평생 모르겠지만 나중에 스프링클이 고양이별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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