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토끼 Sep 04. 2024

무작정 사표 내지 말자

고난의 길이 시작될 지니

나름 자신이 있었다. 이직에 성공할 자신이...

라테라고 하면, 스무 살 때부터 자력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일해왔고 내가 나간다고 할 때마다 사장님은 그렇게도 나를 붙들고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회유했다. 직장에 입사하고서도 물론 아주 근사하고 탄탄한 직장은 아니었지만 내 평범한 스펙에 맞는 나름 괜찮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었다. 마흔 살의 늦은 임신이었지만 이직의 여왕이 뭘 못하겠어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미련도 없이 마지막 직장을 패대기치고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겨우겨우 구한 임시직 직장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구인구직 사이트만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하물며 그러기를 몇 달째,

이직은커녕 이력서를 들이밀 곳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나름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하나 발견했다. 매일 들르는 시청 홈페이지 채용공고에서였다. 도시의 정책을 연구하는 시정연구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직무는 연구 보조 업무였지만 자료조사나 논문연구 같은 일을 하는 연구원이라고 했다. 눈이 번쩍 띄었다.

현재 나의 직책이 '연구원'이라고는 하지만 하는 일이라고는 공문 쓰기, 정산시스템 입력하기, 간단한 자료 만들기에 불과한 지금 업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거기에 출퇴근 시간이 조정가능하다는 문구는 나 같은 애엄마에게는 꿀 같은 문구가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언제나 나의 실수는 항상 뭔가 좋은 건수를 발견하면 흥분해서 그런지 행간의 의미를 깊이 파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상 앞부분인 비교적 간단한 이력서란을 꼼꼼히 채우고 나서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다시 한번 채용공고를 살펴보니 연구분야 부분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어차피 연구 보조다 보니 약간의 전공 차이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이차저차 전화를 걸어봤다.


다행히도 전공차이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출퇴근 시간은 조율이 가능한 거죠?라고 물었더니 조율이 가능한데 유연근무제라는 제도를 통해서라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기에 다시 물어보니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까지 근무하거나 어찌 됐든 일주일에 40시간을 채울 수 있게 조율이 가능한 제도라고 했다.


아... 이런... 주 3일 출근하는 지금도 등원 전쟁 때문에 아침마다 곡소리가 나는데 주 40시간을 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걱정에 나는 또 의기소침해졌다. 그러고 나서 연구원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조직도를 훑어봤다. 연구원들의 이력이 나와있는데 학력이 다들 서울대학교, 도쿄대학교, 애리조나대학교 등등이다. 이런... 어차피 밀어 넣었어도 컷 당했겠구나.


현타가 왔다. 아무리 지방이라지만 싱크탱크인라는 건가. 그래도 나는 여기서 40여 년을 산 찐시민인데 이 지방에 대한 애착은 내가 더 갖고 있지 않을까. 이게 나름 이력서를 다시 들이밀어보고 싶은 약간의 질척거림으로 남았다.


결국 나는 쓰던 이력서를 노트북 휴지통에 내동댕이쳤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수십 번 고민했던 것 같은데 나의 고민이 너무 적었던 걸까. 당연히 임신 중 학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고 나름 취업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경력과 나이가 매칭되는 포지션 하나 찾는 게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까. 내 주변에 가장 많이 뜨는 공고는 보육교사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애 하나 키우기도 벅찬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없고 도대체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타파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소설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왔다. 비록 현실세계에서는 취업이 어렵다지만 소설 잘 쓰는 공부라도 해서 소설도 쓰고 독립출판업계에 뛰어들어볼까 하는 현실불가능한 꿈만 잔뜩 꾸는 요즘이다. 이렇게 내 모든 관심사가 취업에 항진되어 있을 때 잠시 다른 헛짓거리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다.


도대체 40대 이후에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다니던 직장에 무조건 붙어있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끝없는 취업공부를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업을 하기에는 돈이 없고 이 나이에 유튜브라도 들이밀어볼까 싶다가도 내 성향에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긴 한 걸까. 어찌 됐든 나에게는 아직 4개월이라는 계약기간이 남아있다. 어떻게든 괜찮은 직장으로의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꽤 불편한 미용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