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킴 Aug 28. 2024

꽤 불편한 미용실

난 단지 기분전환하고 싶은 선량한 어린양 일 뿐

갑자기 그런 날이 있다.

매일 똑같은 헤어스타일인데 뭔가 머리가 특별히 이상해 보여 변화를 주고 싶은 그런 날...

아마 매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흰머리로 뿌리염색을 하지 않고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었다.


그래도 반백수인 나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셀프염색을 두어 번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면 눈에 띄게 물이 빠져 흉물스러운 머리꼴이 되는 게 짜증 날 때 할 수 없이 미용실을 간다.


그렇게 고민고민하고 간다.


여자에게 미용실은 곧 기분전환이다. 누군가 내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해 주고 음료도 챙겨주고 세심히 돌봐주는 그런 기분이 내가 뭔가 진정한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단골로 애정하는 미용실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이다. 가성비가 아주 좋은데 직원마저 친절해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지 그 직원에게 예약을 하기란 쉽지 않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잡으려면 넉넉잡아 2주 전에는 마음을 먹어야 했다.


오늘 검색 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는데 어느 날 그 직원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그 직원의 친절함답게 다른 미용실로 간다는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할 수 없이 몇 번 본 적 있는 직원에게 예약을 걸고 신나게 미용실로 향했다. 그분은 팔에 휘향 찬란한 문신이 있었다. 왠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듯 다른 사람의 스타일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신뢰가 간다. 마스크까지 깔끔하게 쓰고 있어 신뢰감은 폭발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한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나에게 자꾸 업셀링을 한다. 프리미엄 염색을 해야 물 빠짐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 염색을 하면 물이 빠지게 염색한다는 말일까. 우유부단한 나는 고민에 빠진다. 2만 원 차이라면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적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약간 흔들린다. 그러면서 일반염색은 머리가 아주 까맣게 나온다고 한번 더 내 마음을 흔든다. 나는 까매도 괜찮다고 말했다. 아주 까매질 것이라고 나에게 경고한다.


고민하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럼 프리미엄으로 해주세요"

했는데 가격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진다.


2만 원 당한 건가. 프리미엄은 당연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안해 보지만 그렇더라도 계획했던 것보다 약간의 지출이 더 된 게 마냥 아쉽다. 염색을 하는 동안 미용사는 연신 기침을 해댄다. 몇 주전 코로나로 힘들었던 나는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한번 심어진 불신은 분명 코로나일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변한다. 뭔가 코로나스러운 묵직한 기침이랄까. 이미 내 동공은 지진이 났다. 머리를 감겨주는데 예외 그 묵직한 기침이 사람 미치게 만든다.


아 불편하다. 집에 가고 싶다.


머리를 감고 나서 거울을 보니 아주 염색이 잘됐다. 흑발이 됐다. 머리를 말려 주는데 나는 언제라도 튈 준비를 한다. 다음에는 절대 오지 말아야지. 주차권을 챙겨서 누가 쫓아올세라 꽁무니를 빼서 도망간다. 주차비를 계산하려고 주차증을 넣어보니 이런 젠장! 부가요금이 나온다. 이래저래 참 불편한 미용실이다. 얼른 반백수 탈출해서 돈 벌어야지. 오늘도 근로의욕을 잔뜩 장전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