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차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거의 끌고 가다시피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짠한 마음과 죄책감에 식은땀을 닦아냈다. 차 안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GD 노래를 들었다. 시동을 켜고 핸들을 확 틀어 내가 좋아하는 동네 뒷산으로 갔다. 겨울인지 알았는데 늦가을이었나 보다. 이른 아침에 비가 내려 그런지 축축해진 낙엽이지만 알록달록 색이 예쁘다. GD의 크레용처럼.
진짜 경각심을 느꼈다. 이제 진짜 찐 백수가 된다. 2025년 1월 1일부터 백수로 돌아간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내가 왜? 아직 그래도 몸값이 어느 정도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는데 몸값은커녕 똥값이 된 지 오래였다니.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과 다른 이상을 구분 못한다는 것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건 일품대패 고깃집이라니...
눈여겨본 연구원 자리에 누군가 합격했다. 지난 10월부터 공고와 재공고로 나를 설레게 했었는데 마침표가 찍혔다. 사실 막상 서류를 넣으려고 보니 석사급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연구경력도 변변치 않은 나에게 사실 이런 자리도 쉽지 않은 괜찮은 일자리였는데 재공고가 계속 나니 강짜를 부려보고 싶었나 보다. 전공과 맞지 않는 다른 공석에 지원서를 내지를 않나, 그곳에서 전화가 와서 맞는 전공으로 다시 내보라고 하는 조언을 듣고도 내지 않는 교만을 부리 지를 않나. 아마 냈어도 안 됐을 것 같다.
어찌 됐건 진짜 제로다. 이제껏 이직할 때마다 계속 일해보자고 안 잡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잡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혹시 다른 제안받아본 것 없냐고 나를 떠본다. 진짜 없는데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든다. 사실 지금 자리는 내가 힘들 때 나에게 딱 맞는 좋은 자리를 내줘서 고마운 마음뿐이다. 그래서 다른 기회가 왔을 때 마무리까지 잘해주고 싶어서 안일한 마음으로 기회를 차버렸는지도 모른다. 지키고 싶은 의리랄까.
아무튼 이제 이런 긴 서사는 필요 없다. 무조건 일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괜찮은 자리. 어려울 때일수록 좀 더 내면을 닦아야 한다. 그동안 많이 놀았던 것 같다. 특히 올해 많이 읽어온 나의 미야베 미유키, 정해연과 김복준의 사건의뢰 내용들을 복기하며 뭔가 계획을 새로 세워야 한다. 이렇게 계속 밀리기만 하진 않을 거다.
Golden days are 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