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에서 말단으로, 그리고 다시 시작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실업급여 만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나서야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력서를 새로 써서 여기저기 넣기 시작했고, 별생각 없이 지원했던 공고 하나에서 연락이 왔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너무 빠르게.
깊게 고민할 겨를도 없이, 면사무소 민원 창구 구석 자리에 털썩 앉게 되었다.
지원하고 나서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군청에 서류를 내러 다녀야 했고, 빠진 증빙 때문에 다시 찾아가야 했고,
전 직장 몇 군데에 까다로운 전화를 걸기도 했다.
부담스럽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갈 데 없는 사람에게 체면 따위는 사치였다.
건강검진도 힘들었다.
병원만 가면 심박수와 혈압이 미쳐 날뛰는데, 다행히 딴생각을 하다 보니
혈압을 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어이없지만 덕분에 무사통과.
그렇게 또 하나의 절차가 넘어갔다.
면접 때는 꽤 다양한 질문이 들어왔다.
박사에 팀장까지 했던 사람이 이런 자리에서 괜찮겠냐는 말.
압박이었는지, 배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 말에 나는 지금 내 상황에 얼마나 이 자리가 소중한지,
얼마나 절박한지, 조심스레 말했던 기억이 난다.
눈물이 맺혔다기보다는… 눈가가 조금 반짝였던 것 같다.
그땐 정말 간절했다.
임용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9 to 5의 근무라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아이 걱정, 내 체력 걱정, 오랜만에 다시 사회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점점 마음속 진입장벽을 높여갔다.
나는 그저 공공근로나 행정보조 같은 일일 줄 알았다.
그런데 1년간 공무원 신분이 부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게 생각보다 ‘진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직급은 9급 정도겠지만,
그만큼의 책임과 역할이 따르는 자리였다.
전임자가 하던 업무를 고스란히 인수받았다.
2장짜리 인수인계서를 건네받았는데,
읽어보니 생각보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잘하고 복잡한 일이 많을 것 같긴 했지만,
오히려 그 자잘함이 지금의 나에겐 새로운 활력처럼 느껴졌다.
입사 하루 전엔 임용식에 참석했다.
강당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였고,
이름이 호명되면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임용장을 받고 군수님과 악수를 나눴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이런 구태의연한 의식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보니 내가 진짜 공무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착각 아닌 착각이 묘하게 마음을 다잡아줬다.
어릴 땐 다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을 이런 의식들이,
이젠 마음을 다스리는 장치로 느껴졌다.
첫 출근 날은 긴장됐지만,
면사무소는 생각보다 깔끔했고 조용했다.
내 자리는 입구 맨 구석, 출구 옆이었다.
점심시간에도, 퇴근시간에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
작지만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배정된 부서는 산업팀, 주 업무는 축산이라고 했다.
소, 돼지를 키우는 농장의 업무를 보는걸까.
사실 내가 평생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분야라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내가 모르던 세계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
지루했던 일상에 새로운 도파민처럼 작용했다.
이곳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지만,
환경은 도시와 많이 달랐다.
나는 늘 도시 안쪽만 다녔고,
이쪽으로는 거의 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아침 초록 풍경 속을 지나오는 출근길이
작은 탈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도 순했다.
말도 느긋했고, 표정도 부드러웠다.
그 속도에 나도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입사 몇주전부터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사회복지학 과정을 신청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게 됐다.
신기하게도 이 일과 딱 들어맞는 내용들이 많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사람일이란 정말 알 수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예전엔 그냥 흔한 명언쯤으로 넘겼는데,
지금은 그 말이 괜히 오래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겠다.
계획된 인생은 아니었다.
꼭 내가 바라던 모습도 아니었고.
하지만 지금 이 자리,
조용하고 낯선 이 공간에서
나는 다시 나를 시작하고 있다.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힘이 된다.
다시 일하고, 다시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리고,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 모든 게, 지금의 나에겐 참 고맙고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