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끝났고, 책임은 이제부터였다
그만두면 행복할 줄 알았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 힘들어.”
“그래도 버티는 게 낫지 않아?”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나보다 더 걱정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지금은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그때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행복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동안 미뤄둔 나를
이제야 좀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3주가 지났다.
사람들이 했던 말이
늦게 도착했다.
일자리는 쉽게 생기지 않았고,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뀐다.
‘괜히 그만둔 건 아닐까.’
‘조금만 더 버텼어야 했나.’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집,
조용한 거실에서
나는 자꾸 작아진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일자리 공고를 열어보지만
끝까지 읽지 못하고 닫는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들 앞에서
나는 자꾸 멈춘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공무직이라도 해봐.”
“알바라도 나가.”
“요즘 간병인도 괜찮다던데.”
걱정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흔들린다.
우리 뇌는 불안을 느끼면
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눈앞의 가장 쉬운 선택을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아무 일이나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
그리고 조금 우울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멈췄다.
힘든 상황이지만
눈앞의 쉬운 선택을 붙잡기보다
조금은 멀리 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나를 쓰고 싶은지,
천천히 다시 설계해 보기로 했다.
늦어도 괜찮다.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선택한 길로 가고 싶다.
내 가치는
남이 추천해 주는 일의 종류로
정해지지 않는다.
내가 정한다.
퇴사 후 3주.
나는 지금
불안 속에서도
내 두 번째 인생을
조금씩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