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Oct 26. 2020

9. 그 나라는 어디 있을까요?

정의가 먼저다. 사랑은 그 다음


"너도 내가 사는 행복의 나라로 오게 될 거야... 틀림없이."
나는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마음속으로만 물었다.
'그 나라는 어디 있을까요? 정말로 있는 걸까요?'라고.


티푸스균이 로우드 학원 전체에 퍼진다. 학생 절반이 병상에 앓아누웠다. 결핵을 앓던 헬렌도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제인은 자유롭게 숲을 산책하며 화창한 5월의 계절과 풍경을 만끽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날, 병상에 누워 죽음과 싸우다니 얼마나 슬플까! 세상은 이렇게 즐거운데!" 제인은 문득 안 좋은 예감에 헬렌을 찾아간다. 헬렌은 수척하지만 언제나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그리고 제인에게 말한다. 자신은 이제 곧 떠나겠지만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두렵지 않다고. 나중에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제인은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그 나라는 어디 있을까요? 정말로 있는 걸까요?'  다음날 템플 선생은 서로를 꼬옥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다. 하나는 잠든 채. 하나는 숨을 거둔 채.  




큰 아이 초등 저학년 때, 동네 엄마 하나가 상담을 요청해왔다.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자꾸 맞고 온다는 거다. 그것도 자기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에게.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반에서도 적잖이 말썽을 일으키는 요주의 인물인데, 등치는 커도 순하디 순한 자기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 애 표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아이에게 참아보라고, 피해 보라고도 해봤지만,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도 통제력을 잃으신 것 같다고,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똑같이 때리라"고 할 순 없지 않냐고.


걸핏하면 제 아이부터 싸고도는 이상한 학부모가 그리 많다는데, 주변엔 "똑같이 때리라고 없지 않냐"고 말하는 엄마들이 훨씬 많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악은 미워하되 사람은 품어야 한다. 문제는 늘 그게 한 몸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그가 철저히 악인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대항해 보겠는데, 그 악인은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악을 저지른다. 아직 미성년자라 뭘 몰라서, 안 좋은 기질 혹은 나쁜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서, 그게 상대방을 위한 것인 줄 잘못 알고. 너무 사랑해서 혹은 너무 불행해서, 심지어 심심해서 또는 아무 이유 없이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다.


그러니 이 사회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보복을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해의 이유만큼 보복의 이유 또한 타당해 보여서. 개인에게 맡기자마자 세상은 불법이 난무할 테니.


그렇다 해도, 이 사회는 어쩌다 불의 앞에 저항하는 법 이전에 참는 것부터 가르쳤을까. 어쩌다 정의 이전에 사랑부터 가르쳤을까.


그 엄마에게 제인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 사람들이 언제나 잔인하고 나쁜 사람들한테 상냥하게 굴고 고분고분 따른다면, 나쁜 사람들은 더 자기 멋대로 할 거예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으니까 절대로 바뀌지 않고 점점 못되게 굴 거라고요. 그러니까 이유도 없이 얻어맞는다면 힘껏 맞받아 쳐야 돼요. 반드시. 그 사람이 다시는 때릴 생각을 못하게 힘껏.” (p.106~107)


그렇다.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자꾸 걔가 때려? 그럼 그 아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 하지 말라고."

"그래도 자꾸 때리면?"

"절대 맞고 있지 마. 온 힘을 다해 막아."

"선생님이 친구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는 걸."

"똑같이 되갚아 때려 주라는 게 아니야. 적어도 걔가 널 때리지 못하도록 널 보호라고. 그 아이 팔이라도 꼭 붙들고 막아. 그 아이가 나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말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 아무리 너에게 재미있어도 나쁜 일이라고. 그만두지 않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 같은 어른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선생님한테 말했는데도 계속 괴롭히면 어떡해?"

"그땐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가서 대신 혼내줄게."


정의가 먼저다. 사랑은 그다음이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까지 든든한 백이 되어 주는 것. 그게 부모의 쓰임이 아닌가. '부모의 백'이란 말이 이렇게 왜곡된 현실이 개탄스럽지만, 그게 신이 우리 부모에게 부여한 사명이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곧 모든 세계.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계를 배운다. 부모가 세상의 불의를 향해 싸우는(혹은 나 대신 싸워주는) 것을 보고자란 아이는 불의에 눈감지 않는다. 불의와 싸워 세상을 교정한다. 반대로, 부모를 통해 세상에 불의가 난무하는 걸 보고 자란 아이는 모두가 다 그렇게 타협하며 사는 줄 안다. 자기도 물들어 산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 아무리 정의에 대해 배운 들, 이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을까. 학교에서 배운 가치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갈까. 이 세상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할까.


헬렌이 일찌감치 이렇게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 이유도 그런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기에 절망했고, 이상향으로 도피했다.   


'어른 아이'의 또 다른 극단은 '사악'해지는 것이다. 웰메이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아이유(이지안 역)가 그렇다. 그녀는 사는 게 너무 불행해서 사악해져 버린 아이. 가족 때문에 빚을 떠안고, 버는 족족 사채이자를 갚기에도 버거운,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까지 모시고 산다. 이 시대의 ‘괜찮은 어른’ 이선균(박동훈 역)은 아이유의 불행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의 선의에 대해서라면 일찌감치 적의로 바꿔 버린 지 오래인 아이유는 이선균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내 인생에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요. 많았어요. 반찬도 갖다 주고 쌀도 갖다 주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이라고 경멸하면서. 지들이 진짜 착한 인간인 줄 알았나 부지.”


정의를 믿지 못하기에, 사랑도 받지 못한다.   

 

불의에 대해선 참지 말라는 제인의 말에 '어른 아이'인 헬렌은 또 이렇게 충고한다. 그건 '아직 많이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같은 생각이라고.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아주는 건 야만인들의 교리라고.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는 것이야말로 문명화된 나라의 교리라고. 는 다시 헬렌에게 말한다.


헬렌.

문명국에 모두 문명인만 산다면 말이 옳을지 몰라. 하지만 문명국에 아직 야만인이 살고 있다면, 그에게 정의가 먼지부터 가르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인간은 원체 연약하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이 더 쉬운 법이니. 네가 말한 선하신 창조주께서도 네가 이 세상의 악을 피해 빨리 그분 곁오길 진정 원하셨을까. 그렇지 않을 거야. 말대로 그분은 세상을 만드신 후 보기 좋았다고,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하지 않으셨니. 네가 이 땅에서도 충분히 그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길 바라셨을 거야. 그게 그 분이 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잖니. 너는 침묵할 게 아니라, 네 부당함에 소리 냈어야 해. 그랬다면 제인과 손을 맞잡고 지금쯤 이 찬란한 5월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있었을 텐데. 창조주의 오묘한 손길과 그의 영광을 노래했을 텐데. 그랬다면 너의 선하신 하느님께서 저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통치하고 계심을 온 세상에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정의 이전에 사랑을 먼저 가르친 이 세상 어른으로서, 나는 오늘 헬렌의 무덤 앞에 서서 용서를 빈다. 무조건 '착한 사람'으로 먼저 달려가는 논리로 살지 않겠다고. 행복의 나라는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8. 타인의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