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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13. 2022

한 달에 100만 원

너는 한번 노동을 팔아본 적이 있던가



국어 학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고 말하자 어머니께서 물어보셨다.

그래서 얼마 받는데?
한 달에 100만 원요.
100만 원...?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풋, 이던가 헛, 이던가 희미한 침묵이 지나갔다.

주 5일에 하루 4시간이니까요. 어디 카운터나 식당 알바 나가는 것보다 덜 고되고... 어머니, 우리 나이에 이제 받아주는 데도 없어요. 회계 보던 친구도 여기저기 이력서 내봤는데, 이제 죄다 나이 제한이 걸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대요. 그나마 요양 자격증 따기가 제일 쉬운데, 막상 하루 실습 나가서 노인 대소변 갈고 주름진 가랑이 사이에 비누칠 한번 하고 오면 간신히 끌어모은 결심도 말짱 사라지고 만다고... 그냥 외식비 줄이고 옷 하나 덜 사고 말지, 생각하게 돼버린대요. 이 나이에 하루 4시간 잠깐 나가는 알바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나는 왜 또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해대고 있는 건지.


시어머니뿐 아니다. 친정엄마도 늘 나에게 말했다. 멀쩡한 게 뭐라도 하지, 왜 집에서 노냐고. 그래서 시작한 알바였는데, 친정엄마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아이고, 예전 같으면 돈도 아닌 걸, 그거 선나 받으러 나가니.  


'선나'는 '조금'이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물론 그들의 '침묵'과 '선나'는 잘 나가던 시절의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회한이자, 혹 딸이 주눅 들었을까봐 보내는 친정엄마의 응원 메시지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 안에서 해묵은 반감이 살짝 일다. 100만 원이 선나라고? 그래서 엄마는 제 손으로 얼마나 벌어 봤길래?  


'한 달에 누가 딱 100만 원만 더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남편의 생활비는 10년째 동결이고,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용돈이라도 벌러 일을 나가기 시작하니, 나는 말 그대로 '집에서 노는 여자'라 남편에게 생활비를 올려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애들 학원비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러 나가고 싶진 않았다. 수완 좋은 여자들은 딱 맞는 알바를 잘도 찾아 하더구먼, 나는 어째 아직도 조건 앞에서 망설였다. 아직 그 정도로 아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은 말일 테지. 하지만, 명절 밑 경조사비 압박이 들어올 때나 사고 싶은 책 하나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장바구니에 넣다 빼길 망설일 때, 나는 짜증이 일었다.


불행의 요인은 분명했다.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능력이고, 여유고, 깨진 부부관계도 붙여준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학원 알바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선뜻 마음이 동했던 거다. 학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의 역량을 재빨리 소진시키는 필요악이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엔 영 젬병인...음, 나에게그 제안은 내 신념과 본성을 거스른, 얼마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녀들이 보인 반응에 내 안의 무언가가 살짝 건들린 건 분명했다.


그녀들은 평생 전업주부였다. 물론 바지런하고 알뜰하고 한 푼 두 푼 모아 목돈을 마련할 줄 아는, 나와 다른 살림꾼이다. 돈도 못 벌고 여태 제집 하나 마련하지 못한 게 맨날 바닐라 라떼 시켜놓고 카페에 앉아 글 나부랭이나 쓰는 나와는 차원이 다르단 말씀. 지금도 그녀들은 노는 땅만 보면 씨를 뿌리고 괴력을 발휘해 상추와 호박과 고구마를 키우고 거둬들이는 일꾼이다.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면서도 손으로는 부지런히 마룻바닥을 훔치며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하는 깔끔쟁이들이다. 쥐꼬리만 한 남편 월급을 모아 자식들 대학 장가까지 보내고 집안의 대소사를 부리던 여장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언제 한번 자신의 노동을 팔아 본 적이 있던가. 노동 가치를 평가받아 돈으로 환산해본 적이 있던가? 월급 주는 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을 변형시켜본 적이 있던가? 


없다. 그녀가 매달 받는 생활비는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돈이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그들이 집안에서 아무리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살림꾼이어도, 그들은 맨몸으로 노동시장에 나가본 적이 없다. 고만고만한 여자들과 나란히 세워져서 비교하고 평가 받아본 적도 없다. 그러니, 사회에 나가 노동을 판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밖에. 경력 단절된 여자가 자신의 자존심과 적절히 타협하며, 주 5일 하루 4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과, 그것이 한 달에 100만 원이 될 수 있는 조합이란 게 그 얼마나 많은 조건의 합을 맞춰 얻어낸 것인지,


자신만의 리그 안에서 늘 안주인 노릇만 해본 그들이, 알 턱이 없었다.


안타깝지만 여자들의 그림자 노동은 정당한 방식으로 환산되어 본 적이 없었던 어두운 과거 만큼이나 단단하게 그들만의 리그로 남아 있다. 그들은 가사 노동에 대해 제대로 환산받지 못했지만, 가정 안에서만큼은 CEO처럼 군림했다. 그것이 가족관계에 드리우는 함의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제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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