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Dec 01. 2020

23. 결핍

나에게 없는 그걸 무슨  수로 너에게

너는 인생에서 제 역할을 하고 누구한테도 짐을 지우지 않지.


일주일 정도를 예상했던 게이츠헤드로의 여행은 한 달을 훌쩍 넘겨버리고야 말았다. 리드 부인의 남은 두 딸이 제인에게 좀 더 머물러 주길 부탁했기 때문이다. 매사 불평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미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이 두 귀족 아가씨들의 몸에 밴 습관이다. 그렇게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처리해준 뒤 제인은 드디어 손필드로 출발한다. 페어팩스 부인은 곧 로체스터가 잉그램 양과 결혼할 것 같다는 소식을 알려왔고 그렇게 된다면 제인의 미래는 또다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손필드가 가까워질수록 제인은 어쩐지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제인은 찰나의 행복일지라도, 누군가 사랑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로 결심한다.




한때 강남 사교육 시장에서 '결핍'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아쉬운 것이 없이 너무 풍요로워서 아이들이 공부를 성취하는 데에도 무기력하고 반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가장 핫한 공부법과 자기 계발 이론이 난무하는 그 세계에서 결핍 아이템은 잠시 유행을 타는가 싶더니 이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 코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강남의 '평균' 사교육비가 우리 집 한 달 생활비만큼이라는 기사가 돌 때였다. 그 몇 년 뒤엔 고3 원룸 공부법이 유행했다. 고3 학생 몇 명이 조를 짜서 원룸 하나에서 생활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각 과목을 담담하는 과외 선생들이 원룸을 들락거리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밥을 해주고 청소해 주는 아주머니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아이들의 생활을 도왔다. 이 비용은 우리 집 한 달 생활비를 훨씬 웃돌았다. 대학만, 공부만 잘하면 뭐든 밀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결핍이라니. 먹힐 리 없었다.     


게다가 결핍은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를 확연히 가르는 단어이자, 우리 세대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단어가 아닌가. 우리 부모 세대는 먹고 자고 입는 기본 의식주의 결핍을 경험한 세대지만, 우리 세대가 아는 결핍이라고 해봐야 고작 자전거나 야구 클럽, 마론 인형 정도다. 어린 마음엔 그것도 결핍이라고 마음에 오래 두고 남아 지금 내 아이들에게 두세 개씩 마구 사다 안기는 그것. 그러니, 우리 아이들 세대에 우리는 결핍을 무기로 결코 싸울 수 없다. 내 어머니가 아직 집 한 채도 없으면서 여행을 다니고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는 우리 세대를 향해 혀를 쯧쯧, 날려도 우리가 아랑곳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왜소증이나 거인, 다모증 같은 기형인들을 주로 찍는 '디앤 아버스'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그녀의 사진 속 인물들은 일반인들의 기준에선 죄다 '결핍' 한, 장애인이자 주변인이자 소외자들이다. 그녀는 왜 그 많은 피사체 중에 하필 이렇게 결핍한 인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은유' 작가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디앤 아버스는 결핍 한 그들에게서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멋지게 통찰한다.  


"내가 많은 사진을 찍은 서커스단의 기형인들은 내게 있어서 최초의 테마들 중의 하나였고, 내게 엄청난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정말로 그들을 존경했으며,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마치 느닷없이 당신을 불러 세우고는 수수께끼를 풀라고 요구하는 신화 속의 인물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외상의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형인들은 외상과 함께 태어난다. 그들은 이미 삶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족이다." (p.127)


보통 사람이라면 늘 품고 사는, 스키를 타러 갈 때나 긴 여행을 앞두고 뿐 아니라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일상 한가운데에서도 불쑥불쑥 우리를 침범하는 질문. 혹시 이 길로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외상을 입고 살아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우리 내면의 깊은 불안을 부추기는 그 질문. 그러니 외상과 함께 태어나 이미 삶의 거대한 시험을 통과해버린 그들은 우월하다는 것이다. 결핍 너머  그것을 품고 사는 이들은 영웅을 넘어 스핑크스처럼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는 신의 존재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핍은 위대한 자들을 만드는 통과의례이지, 한낱 공부 의욕이나 충동질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3년 전쯤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그를 위해 만들어주던 음식을 거절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세팅한 인생 커리큘럼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결함이 많은 엄마였다 하더라도 큰 아들 사춘기 때 받아 든 성적표는 내게 너무나 가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구속과 억압이 싫었다. 자유는 나에게 무엇과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여서, 나는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자유를 주고자 했다. 아이가 아직 내 손에 모든 결정을 의탁할 때까진 특별히 서로 어긋난 기억이 없다. 간혹 자기 뜻대로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때에도 돌아와선 "엄마 말이 맞더라"고 피드백해주던 착한 아이였다.


사춘기. 이제 아이에게 서서히 권한을 넘겨주어야 하는 시기. 하지만 자유에 취한 아이는 내가 양도한 자유만 홀딱 선택하고는 도무지 그에 따른 책임은 지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학원에 가기 싫은 날. 그럴 수 있다. 대신 선생님께 미리 못 가는 이유를 '직접' 말씀드리라고 하자, 최소한의 그것조차 하지 않으려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 이유는 마땅치 않아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변명처럼 들릴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성실하게 다닐 게 아니면 학원을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이라면 공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아이는 공부에 올인하긴 싫지만, 학원은 또 못 끊겠다고 버텼다. 주변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잘라 끊어야 아이가 정신 차릴 거라고 충고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사는 어느 부모가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독한 엄마는 못되었다.


게다가 아직 미완성이 아닌가. 내 아이가 설혹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더라도, 부모는 아이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그런 아이의 싹을 내 손으로 미리 자를 순 없었다. 다음 번엔 열심히 잘해보겠다는 아이에게 '너는 신뢰를 잃는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고. 이제 더 이상 기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말과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실패를 통해 스스로 깨닫기만을 바랄 뿐. 그때가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 그게 언제든 또 기다릴 밖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지,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게도 하는지, 네 눈에 우습게만 보이는 어른의 세계가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나만큼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사실...  많은 실패 앞에 그런 몇 가지 사실만 알게 된다 해도 나는 더 바랄 나위 없을 것 같다.


3년 여 숱한 시행착오가 아이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시행착오를 통해 적어도 '나'는 변했다는 것. 내가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무엇을 놓쳤던가. 당시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 중에 <모모야 어디 가?>라는 책 안에서 그 답이 찾아졌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떠난 어느 한 해 헬프 엑스 여행을 기록한 것이다. '헬프 엑스'(HEPLx)란 장기여행의 일종으로, 호스트 집에 머물면서 그 집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숙박과 음식을 제공받는 형태의 여행을 말한다. 저자는 당시 갓 여덟 살, 다섯 살이 된 두 아이와 하루 4시간을 놀아주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탈리아 어느 시골 가정집에 머물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엄마와 함께 정성껏 만든 한국 음식들을 식탁에 차려내던 저녁. 며칠 계속된 한국 음식의 향연 앞에 그집 아이들이 못 먹겠다며 항의를 하고 나섰다. 그날 메뉴는 잔치국수. 고작 다섯 살 난 아이에게 밍밍한 국물에 풀어놓은 동양 어느 작은 나라의 국수가 입에 맞을 리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건. 하지만 빵을 먹겠다고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엄마 '오리에따'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이게 저녁이야. 먹든지 말든지 자유지만 더 이상 먹을 걸 주지는 않을 거야."
불만스러운 얼굴로 젓가락질을 하는 토미를 바라보며 오리에따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러고는 언젠가 인도 같은 곳에 데려가서 세상에 배고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보여주겠다며 혀를 끌끌 찼다. (p.60)


오리에따가 식탁 앞에서 아이들에게 보인 철학. 부모의 권위 앞에 순종하는 아이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여느 집 식탁의 풍경 앞에 나는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뭘 놓쳤는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자유'에 취해 아이에게 '권위'를 가르치지 못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 질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아이에게 너무 일찍 '자유'와 '선택'을 맡겼다. '자유'는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한 것이지만, 다른 모든 가치들처럼 치우치면 해가 되는 법. 균형을 삶의 모토처럼 삼고 살자 하면서도 나는 그걸 몰랐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너'만 있고 '나'는 없는 내 바운더리의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너'가 엥, 소리만 내도 달려가 코를 킁킁 거리며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너'가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다니자 '너'에게 한시도 눈 떼지 못했다. "엄마 이게 뭐예요?" 묻기라도 할라치면 설거지하던 것을 멈추고 '너'에게 달려와 답해주었다. 유치원을 가서 '너'가 행여 다른 애들 사이에 뒤처질까 봐 글을 가르쳤고, 학교에서 혹 덩치 큰 애들 사이에서 주눅 들까 봐 아침마다 생선이며 고기를 구워 먹였다. 모든 것을 '너'의 필요에 맞추고, '너'의 요구에 집중했다. 내 손길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너'가 너무 황홀해 '나'는 빛을 잃고 초라해지는 것도 몰랐다. 최소한 '너'가 '나' 때문에 잘못될 일은 없어야겠기에 너에게 NO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나'는 오리에따처럼 "인도를 보라고. 그들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의 입에는 아침마다 생선을 넣어주며 "우리 아이는 워낙에 입이 짧아서"라고 변명하며 살았다. '함께'사는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너에게 엄마도 아플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말하지 못했다. 때로 내 삶이 녹녹지 않아서 너의 부름에 즉시 응답할 수 없고, 너는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가르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는 나의 말보다 내 행동을 더 잘 알았다. 그 아이를 이기적이고 무신경하게 만든 건 바로 '너'가 아닌 '나'였다.


그러니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그 모든 가치를 '너'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너를 붙들고 흔든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 말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메멘토

<모모야 어디 가?> 김소담 저, 정은문고

 



매거진의 이전글 22. 성찰 없는 노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